“저는 역사교육학과에 재학 중입니다. 몇 년 전 교생을 나갔을 때 5.18 민중항쟁에 관한 수업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학생들은 불의를 보고 모른 척하지 않고 기꺼이 맞서 싸우는 용기,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바쳤던 열사들의 말을 잊지 않겠다고. 따라 배우겠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날 저는 다시 한번 다짐했습니다. 미래 세대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겠다 (중략)
저희의 행위는 민주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한 구성원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들의 목소리를 듣기 거부하는 대통령에게 국민의 목소리를 들으라고 요구하는 것이, 거부한다면 직접 전달하겠다고 대통령 집무실에 맨몸으로 면담요청을 간 것이 어떻게 공동건조물침입이 되고 이신고 집회가 되며, 어떻게 죄가 될 수 있단 말입니까. 이 정도의 목소리조차 국민이 내지 못한다면 그 사회가 어덯게 민주주의 사회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4일 대통령실 앞 면담요청하려다 구속기로 선 학생의 영장실질심사 당시 최후진술 중-
‘김건희 특검법’과 ‘채해명 특검법’과 관련, 거부권을 남발한 윤석열 대통령에게 면담을 요청하려던 대학생진보연합(대진연) 회원 중 1명이 6일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서 한 최후진술의 일부분이다.
대학생 4명은 지난 4일 대통령에게 면담을 요청하기 위해 국방부 후문을 통해 진입을 시도하다 현장 체포됐다. 이후 일요일인 6일 오후 영장실질심사를 받고 용산경찰서에 유치됐다 자정이 넘어서야 풀려났다.
법원은 "피의자들 주거가 일정하고 현 단계에서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검찰의 영장청구에 기각 결정을 했다.
상식적인 법원의 판단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현장을 지키던 대진연 회원들과 시민들은 환호했다. 이런 가운데 학생들이 현장에서 체포돼 기각 결정을 받고 경찰서 밖을 걸어 나오기까지 경찰이 보인 고압적이고 반인권적인 태도는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다.
무릎으로 찍고 손목 케이블타이로 ‘꽁꽁’.. 사지들고 바닥에 내동댕이
경찰은 학생들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을 무릎으로 찍어 포박한 후 손목을 케이블타이로 묶고, 사지를 들어 끌고 갔다. 한 남학생이 손이 묶인 채로 경찰서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모습이 언론에 공개되기도 했다.
이처럼 무리하게 학생들을 연행한 경찰은 영장까지 신청했고, 검찰은 법원에 영장을 청구했다. 그러더니 사흘 만에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가 열린 것이다.
연행된 학생의 부모 “왜 면회까지 막나.. 5.18 계엄군 떠올라”
현장에서 연행됐던 한 학생의 부모 A씨는 “우리 딸이 용산경찰서로 연행됐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대한민국에 법과 정의가 있는가”라고 통탄했다.
A씨는 “아이들이 무슨 잘못이 있느냐”며 “대통령실 앞에 맨몸으로 갔다. 아이들이 무슨 위협이 된다고 무릎으로 명치끝을 눌러 숨을 못 쉬게 만들고 케이블 타이로 손을 묶고 사지가 들려 옷이 벗겨질 정도로 끌고 가야 하느냐. 5.18 계엄군이 떠올랐다. 옳은 말 한 것도 잘못인가”라고 분개했다.
접견조차 쉽지 않았다. A씨는 “아이가 연행된 날 밤 소식을 듣고 용산경찰서로 면회를 하러 갔지만, 경찰서 밖 추운 맨 바닥에서 두 시간을 기다리게 했다”며 “아이들이 묵비권을 행사하기 때문에 신원 확인이 안 된다. 가족관계증명서를 떼어오라고 하더라”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결국 허탕을 쳤고, 다음날도 하루 종일 기다렸지만 면회할 수 없었다는 게 A씨의 설명이다.
A 씨는 "영장실질심사가 열리는 법정에 부모는 들어갈 수도 있다는 말에 기대를 걸고 대기했지만, 결국 참석할 수는 없었다"며 답답한 마음을 표하기도 했다.
기자회견 내내 경고 방송하며 방해한 경찰들.. 고압적 태도에 시민들 분개
6일 오후 3시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대학생 4명에 대한 영장실질심사가 열린다는 소식에 대진연 회원들과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기각 결정을 촉구'하는 긴급기자회견을 열었다.
구호 제창도 기자회견에서 일상적으로 행하는 표현의 일부이지만, 경찰은 구호제창을 빌미로 ‘미신고 불법집회’라고 규정하며 경고방송으로 맞대응하는 모습이었다.
‘왜 기자회견을 불법 집회로 규정해 무리하게 막나’라는 기자의 질문에는 “프레스 카드를 목에 걸고 와라”, “공무집행방해를 하지 말라”며 일방적인 주장을 하기에 급급했다. 취재진의 카메라에 자신의 얼굴이 찍힐까 부담스러웠는지, 경고방송 안내문으로 얼굴을 가리던 경찰은, 경찰 차량을 타고 안내방송을 이어가지도 했다.
용산경찰서 앞에서 학생들에게 손가락질, 취재방해도
영장실질심사 이후에도 경찰과의 실랑이는 계속됐다. 면회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현실에 항의하는 학생들을 향해, 경찰은 손가락질은 기본이었다.
저녁 7시, 용산경찰서 앞에서 기자회견이 다시 열리자, 도로 질서와 안전을 빌미로 현장에 모인 유튜버들을 인도 위로 몰아 사실상 기자회견을 파행시켰다.
꿋꿋하고 의연한 대학생들, 연행 중에도 “김건희를 특검하라” 외쳐
경찰의 고압적이고 폭력적인 태도에도 학생들은 전혀 기죽지 않는 모습이다. 구속위기에 처했던 학생들은 오히려 연행 중에도 “거부권 남발 중단하라” “김건희를 특검하라”를 목청껏 외치는 모습이었다.
또 법원의 기각 결정 후에는 환한 모습으로 늦은 시간까지 마음을 졸이며 자리를 지켜준 시민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한편, 경찰이 케이블 타이로 민간인의 손목을 묶는 등의 과도한 방식으로 연행한 지점에 대해서는 인권 침해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국가인권위는 지난 2011년부터 3년 연속 경찰청에 ‘앞수갑’ 사용 원칙 등을 명시한 수갑 사용 규정을 마련해 시행을 권고한 바 있다. 이에 따라 경찰청은 2013년 2월 ‘앞수갑’ 사용을 원칙으로 한 지침을 마련했다. 그런데 수갑도 아니고 케이블 타이를 뒤로 묶어 끌고 갔고, 경찰서 바닥에 내동댕이 쳐 둔 것은 심각한 인권침해로 볼 수 있다.
경찰의 과민 반응은 사실상 학생들이 국회 앞에서 농성을 시작한 지난달 27일부터 계속되고 있다. 국회 앞에 즐비하게 늘어선 농성 천막 사이로 학생들이 천막을 설치하려 하자 첫날부터 강경하게 막았고, 현수막과 피켓을 제 멋대로 훼손하기도 했다. 심지어 학생들을 응원하기 위해 간식을 사 들고 찾아 오는 시민들의 가방 속 검열까지 해 비판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