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보도
한동훈 부친 AMK의 엽기적 악행 또 드러나 최저임금도 떼먹으며 120억 배당잔치
한동훈 부친 한무남의 악덕기업 AMK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부친 한무남 씨가 한국 대표였던 AMK(한국 어프라이드 마그네틱스)가 노동자 탄압을 할 당시 한 해 미국 주주들에게는 120억 배당 잔치를 했던 사실이 1998년 조세심판원 결정문을 통해 확인됐다. AMK는 컴퓨터 부품 회사로 1968년 2월 한국에 공장을 설립했다. 1980년대 말 노동조합 설립 후, 당시 노동자들은 '노조 때문에 회사가 망한다'라는 협박을 받아왔으나, 한국의 값싼 노동력을 악용해 얼마나 미국 주주들의 배를 불렸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AMK는 한국의 노동운동이 활력을 얻고 임금상당액이 높아지자, 상여금을 깎아 임금을 낮추는 수법 등의 꼼수를 써서 근로기준법 위반을 일삼고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요구하는 노동자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노조 활동을 하면 한국을 떠나겠다'는 협박으로 고용불안을 일삼는 등 강경 자세로 일관했던 것.
한국 정부가 미국 투자기업인 AMK의 한국 공장 설립 승인을 한 것은 1968년 2월이다. 그러나 미국 본사는 2년 만에 투자금을 차관형식으로 바꾸었다. 1970년 4월 29일자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AMK는 31만 6천 달러를 직접 투자했으나, 이중 80%에 달하는 25만 달러를 회수해 차관형식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이후 1980년, 외자도입심사위원회는 AMK에 50만 달러 차관을 추가로 승인했고, 1988년에는 외국인 기업의 자율 경영폭을 확대해 총 매출액 5%범위 안에서 인가받은 영업 외의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는 단연 AMK도 포함돼 있었다. 1990년 대법원 전원합의부는 AMK가 서울구로구청장을 상대로 낸 등록세 부과처분 취소청구 사건 상고심에서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해 공장 이전에 대한 세액도 전액 면제해 줬다.
미국 본사는 한국의 값싼 노동력을 통해 큰 이익을 거뒀음은 당시 보도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1985년 당시 매출액순이익률 상위 50개사 중 AMK가 포함됐던 것.
또 미국 본사는 AMK에 지불해야 할 채권을 장기간 지연시키고, 인정이자에 대한 법인세를 부과하겠다는 국세청의 결정도 부당하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당시 결정문을 살펴보면, 심판원은 AMK가 내야 할 세금을 대폭 축소해 주었다. 특히 1996년 10월 1일~ 1997년 9월 30일 사이 이익잉여금 중 120억원을 주주들에게 배당했다는 내용은 공분을 사는 지점이다.
이 시기에 노동자들의 삶은 그야말로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처참했다. 1996년 8월 2일자 한겨레에는 AMK 충북지역 공장에서 일하다 해고돼 투쟁하던 노동자가 치료시기를 놓친 노동자의 가슴 아픈 사연도 실려 있다.
”숨이 차올라 말하기도 힘들고 물 외에는 못 먹는 김씨는 살고 싶다며 울먹였다. 금방 참 열심히 살았는데 팔잔가봐요라며 운명을 받아들인다(중략) 에이엠케이에 취직했던 김씨는 지난 90년 민주노조추진위를 만들어 파업을 주도하다 해고됐다. 김씨 등의 희생으로 탄생한 이 회사민주노조는 지금도 충북지역 노동운동의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맞고 기절하고 경찰서 들락거리다 결국 해고돼 기나긴 해고무효싸움을 벌이다 모두 포기한 김시는 이제 삶의 막다른 구석에 몰려 있다. 몇 년전 결혼해 달 둘을 두었지만, 딸, 남편과도 떨어져 친정 구석방에서 홀어머니의 병간호를 받으며 버티고 있다. 어머니는 20대 꽃다운 나이의 딸을 먼저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눈물이 말랐다”1996년 8월 2일자 한겨레
"한동훈 위원장님, AMK 노동자들 기억하십니까?"
한편, 한동훈 위원장은 오는 4월 10일 치러지는 총선을 앞두고 유독 재래시장을 자주 찾는 모습이다. 친서민 이미지를 주기 위한 전략으로 읽힌다.
한 위원장은 지난 2월 23일 원희룡 전 국토부 장관을 후보로 내세운 인천 계양의 전통시장을 찾았다. 그곳에서 미리 짜여진 동선을 따라 어묵집 앞을 찾은 한 장관에게 'AMK 노동자들을 기억하느냐'라고 묻자, 한 위원장은 어묵도 먹지 않고 서둘러 현장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