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언론 뉴탐사가 계엄 당일 F4(기재부·한국은행·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회의 관련자들의 진술을 분석한 결과, 최상목 당시 기재부 장관이 계엄 후속조치를 주도한 정황이 포착됐다.
거짓말로 시작된 은폐 시도
뉴탐사가 계엄 당일 보도자료 작성 경위를 추적하자 기재부 자금시장과장의 진술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처음에는 "은행연합회에서 보도자료를 작성했다"고 했다가, 추궁이 이어지자 "이메일로 주고받으며 작성했다"로 말을 바꿨다. 결국 "금감원 실무자와 함께 작성했다"는 새로운 주장까지 등장했다. 회의 내용조차 모른 채 보도자료를 준비했다는 최초 진술은 완전히 무너졌다.
보도자료에 숨겨진 6분의 미스터리
가장 큰 쟁점은 보도자료 작성 시점이다. 자금시장과장은 "금감원 실무자가 0시 28분에 보도자료를 카카오톡으로 전송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PDF 파일의 생성 시각이 0시 22분으로 확인되자 당황하기 시작했다. "금감원 실무자가 HWP와 PDF 두 파일을 0시 22분에 만들어 0시 28분에 전송했다"는 새로운 해명이 나왔다.
의문은 깊어진다. 긴박한 상황에서 왜 6분이나 지연됐을까. 자금시장과장은 "은행연합회 전산망 문제"를 거론했다. 하지만 카카오톡으로 파일 두 개를 전송하는데 6분이나 걸렸다는 설명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다른 얘기를 할 수도 있고, 통화를 할 수도 있지 않았겠느냐"는 변명은 오히려 의혹을 키웠다.
보도자료 배포 시각이 이 의혹을 더욱 굳힌다. 0시 22분 PDF 파일이 생성됐고, 0시 28분 내부 전송이 이뤄졌다. 이어 기자들에게는 0시 43분에 배포됐다. F4 회의는 0시 40분에 끝났다. 회의가 끝나자마자 3분 만에 보도자료를 배포했다는 얘기다. 정상적인 회의였다면 불가능한 시간대다.
결국 6분의 시간차는 결정적 단서가 된다. 왜 0시 22분에 만든 보도자료를 회의 참석자들에게 보여주고 검토받았을까. 답은 하나다. 이미 결론이 정해져 있었고, F4 회의는 그저 이를 추인하는 형식적 절차였다는 것이다. 6분간의 시간차는 회의 참석자들이 사전 준비된 보도자료를 최종 검토한 시간으로 추정된다. 0시 43분 배포는 이미 준비된 보도자료를 회의 종료와 함께 신속하게 언론에 내보냈음을 보여준다.
뒤틀린 실무자들의 진술
F4 회의 보도자료에 금감원 담당자로 이름을 올린 신상주 금융시장총괄팀 수석은 "보도자료는 기재부가 99% 작성하고 우리는 회람 정도"라고 잘라 말했다. 이는 "금감원 실무자와 함께 작성했다"는 기재부 자금시장과장의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실제 F4 회의에는 통상적인 실무자인 신상주 수석 대신 이복현 금감원장의 '수행직원'이 참석했다. 보도자료에 이름을 올린 담당자는 회의에 참석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이례적인 참석자 교체와 이복현 원장의 갑작스러운 조기 퇴근은 이날 F4 회의의 특수성을 보여준다.
타임라인이 드러낸 결정적 증거
계엄 당일의 시간대별 기록이 거짓말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기재부 자금시장과장은 "10시 40분경 연락을 받고 11시경 은행연합회에 도착해 회의 시작 전부터 준비했다"고 실토했다. 이는 F4 회의 시작 시각인 23시 40분보다 훨씬 이전부터 무제한 유동성 공급이라는 결론이 이미 정해져 있었음을 보여준다.
더욱 의미심장한 것은 보도자료에 찍힌 시각이다. 회의는 0시 40분에 끝났지만, 보도자료에는 회의 시작 시각인 23시 40분이 그대로 남아있다. 정상적인 회의였다면 당연히 종료 시각을 기준으로 보도자료가 작성됐어야 한다. 이는 회의 시작도 하기 전에 이미 보도자료가 준비돼 있었다는 증거다. 결국 F4 회의는 이미 정해진 결론을 형식적으로 추인하는 자리에 불과했던 것이다.
더욱 의미심장한 것은 보도자료에 찍힌 시각이다. 회의는 0시 40분에 끝났지만, 보도자료에는 회의 시작 시각인 11시 40분이 그대로 남아있다. 정상적인 회의였다면 당연히 종료 시각을 기준으로 보도자료가 작성됐어야 한다. 이는 회의 시작도 하기 전에 이미 보도자료가 준비돼 있었다는 증거다. 결국 F4 회의는 이미 정해진 결론을 형식적으로 추인하는 자리에 불과했던 것이다.
기재부의 통상적인 보도자료 관행과 비교하면 이는 더욱 의심스럽다. 기재부는 보도자료 배포 시점을 항상 회의 종료 이후로 설정하며, 오후 시간은 24시간제로 표기한다. 실제 2024년 12월 30일자 보도자료를 보면, 오전 7시에 시작된 회의의 배포 시점은 회의 종료 시각인 8시 30분으로 명시돼 있다. 그러나 계엄 당일 F4 회의 보도자료는 이러한 관행을 두 가지나 깼다. 회의 시작 시각을 배포 시점으로 기록했을 뿐 아니라, 실제 회의 시각인 23시 40분을 11시 40분으로 표기한 것이다. 수십 년간 이어온 기재부의 보도자료 작성 관행을 이처럼 어긴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보도자료가 회의 이전에 이미 준비돼 있었고, 담당자가 이를 급하게 수정하는 과정에서 남긴 결정적 실수로 보인다.
계엄문건과 F4 회의의 실체
최상목의 진술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는 "계엄문건을 보지도 않고 주머니에 넣어뒀다가 차관보에게 건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통령이 직접 건넨 문건을 확인도 않은 채 다른 이에게 전달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더구나 종이 한 장짜리 문건이 그토록 무겁고 거추장스러웠다면, 굳이 차관보에게 맡길 이유도 없었다. 결국 최상목은 계엄문건을 읽고 그 내용을 파악한 뒤, 차관보에게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전달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실제로 그는 22시 30분 계엄 선포 직후 윤석열로부터 문건을 전달받았다. 하지만 이 결정적 시점을 숨기려는 듯 "F4 회의가 끝날 때쯤" 또는 "국회 계엄 해제 의결 후"로 계속 열람 시점을 뒤로 미뤘다. 이는 계엄 직후 자신이 주도한 F4 회의가 계엄 후속조치의 일환이었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한 시도로 보인다.
흑기사처럼 등장한 한국은행 이창용 총재
사태는 더욱 복잡해졌다. 계엄 당일 언론 보도에는 분명 최상목이 무제한 유동성 공급을 주도한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계엄 해제 후 한참이 지나서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무제한 유동성 공급을 내가 적극적으로 제안했다"며 갑자기 나섰다. 뉴탐사가 한국은행 공보담당자에게 확인을 시도했으나 "확인해 줄 수 없다"며 즉답을 피했다.
이는 단순히 최상목을 보호하기 위한 발언으로 보기 어렵다. 대통령을 만나고 온 최상목이 F4 회의를 주도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회의 참석자 전원이 내란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창용 총재의 뒤늦은 '자백'은 F4 회의의 성격을 바꾸기 위한 시도로 해석된다. 대통령을 만나지 않은 인물이 회의 안건을 주도한 것처럼 만들어 내란 혐의를 피하려는 꼼수인 셈이다.
조직적 은폐 시도
그러나 시간대별 기록과 관계자들의 모순된 진술은 이미 진실을 말해주고 있다. F4 회의는 긴급 경제회의가 아닌, 계엄 후속조치를 실행하기 위한 형식적 절차였다. 최상목이 윤석열의 지시를 받아 F4 회의를 통해 무제한 유동성 공급을 관철시킨 것이다.
기재부 관계자들은 최근 뉴탐사의 추가 확인 요청에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고, 카톡 확인조차 거부했다. 진실을 덮으려는 조직적 은폐 시도가 계속되고 있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서 거짓말의 흔적들은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