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75년 민주주의 압살해 온 계엄법, 국회 다수당이면 해제도 막을 수 있다

'12·3 계엄' 통해 드러난 치명적 결함...대한민국 민주주의 위해 폐지해야

2024-12-28 09:06:18

1949년 제정된 계엄법은 75년간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질식시켜온 독재의 도구였다. 이승만 정권의 부산정치파동(1952년), 박정희 정권의 유신헌법 선포(1972년), 전두환 신군부의 5·17 쿠데타(1980년), 그리고 2024년 12월 3일 계엄령까지 - 계엄법은 독재자들의 손에서 '합법적 독재'를 가능케 한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이 법은 계엄을 선포하는 순간 헌법이 보장한 모든 기본권을 정지시키고, 입법·사법·행정 삼권을 계엄사령관 한 사람에게 집중시킨다. 특히 영장 없는 체포·구금, 언론 통제, 집회·결사의 자유 제한, 민간인 군사재판 회부 등 독재정권이 필요로 하는 모든 도구를 망라하고 있다. 군부독재 시절 이 법은 '합법적 독재'를 가능케 한 근거였다.


군부 쿠데타의 법적 근거가 된 제6조


1949년 계엄법 제6조는 군부 쿠데타에 법적 근거를 제공한 독소조항이다. 이 조항은 다음과 같다.


제6조 제3조와 제4조의 경우에 교통, 통신의 두절로 인하여 대통령의 계엄선포를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에는 당해 지방의 관할하는 좌의 군사책임자가 임시로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

1. 특명의 사령관 2. 군사령관 3. 사단장 4. 병단장 5. 요새사령관 6. 위수사령관인 독립단대장 7. 함대사령장관 8. 함대사령관 9. 통제부사령장관10. 경비부사령관 11. 전각호의 제관과 동등이상의 권한있는 군대지휘관
1949년 제정당시 계엄법

이는 11개 직위의 군 지휘관에게 사실상 쿠데타의 길을 열어준 것이나 다름없다. "교통, 통신의 두절"이라는 모호한 조건만으로도 군부가 독자적으로 계엄을 선포할 수 있게 한 것이다. 특히 "전각호의 제관과 동등이상의 권한있는 군대지휘관"이라는 포괄적 규정은 사실상 고위 군 간부 누구나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 조항은 2017년 개정으로 삭제됐지만, 12월 3일 계엄령은 대통령이 국무회의 심의를 형식적 절차로 전락시키고 독단적으로 추진했다. 이는 75년 전 계엄법 제정 당시의 독소조항보다 더 위험한 형태로, 행정부 수반이 입법부를 무력화하려 한 시도였다.


'무소불위 계엄사령관' 조항의 위험성


현행 계엄법 제9조는 한 명의 계엄사령관에게 초헌법적 권한을 부여하는 독소조항이다. 이 조항의 실체를 들여다보자.

제9조(계엄사령관의 특별조치권) ① 비상계엄지역에서 계엄사령관은 군사상 필요할 때에는 체포ㆍ구금(拘禁)ㆍ압수ㆍ수색ㆍ거주ㆍ이전ㆍ언론ㆍ출판ㆍ집회ㆍ결사 또는 단체행동에 대하여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다. 이 경우 계엄사령관은 그 조치내용을 미리 공고하여야 한다.
현행 계엄법

이 조항의 독소는 세 가지다. 첫째, "군사상 필요할 때"라는 모호한 조건만으로도 기본권 제한이 가능하다. 이는 계엄사령관의 주관적 판단으로 헌법상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의미다. 둘째, 영장주의를 완전히 배제했다. 체포·구금·압수·수색에 영장이 필요 없다는 것은 법치주의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셋째, "특별한 조치"라는 포괄적 용어를 사용해 계엄사령관의 자의적 권한 행사가 가능하다.


12월 3일 계엄령은 이 조항의 위험성을 여실히 보여줬다. 모든 정치활동과 언론보도를 통제하고, 의료인 강제동원까지 시도했다. 이는 1980년 전두환 신군부가 이 조항을 근거로 민주화 운동을 폭력적으로 진압했던 역사의 재현이다. 특히 계엄사령관은 군수물자 징발권까지 보유해, 민간 자원의 군사적 통제도 가능하다. 사실상 입법·사법·행정 삼권을 한 사람에게 집중시킨 것이다.


"조치내용을 미리 공고하여야 한다"는 단서 조항은 실효성이 없다. 이미 계엄이 선포된 상황에서 사후 공고는 기본권 침해를 정당화하는 형식적 절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결국 제9조는 계엄사령관 한 명에게 국가의 모든 권력을 쥐어주는 위험한 조항인 것이다.


'재판받을 권리 박탈' 조항의 실체


현행 계엄법 제10조는 민간인을 군사재판에 회부할 수 있는 위험한 조항이다. 이 조항의 내용을 면밀히 살펴보자.

제10조(비상계엄하의 군사법원 재판권) ① 비상계엄지역에서 제14조 또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죄를 범한 사람에 대한 재판은 군사법원이 한다. 다만, 계엄사령관은 필요한 경우에는 해당 관할법원이 재판하게 할 수 있다.

1. 내란(內亂)의 죄 2. 외환(外患)의 죄 3. 국교(國交)에 관한 죄 4. 공안(公安)을 해치는 죄 5. 폭발물에 관한 죄 6. 공무방해(公務妨害)에 관한 죄 7. 방화(放火)의 죄 8. 통화(通貨)에 관한 죄 9. 살인의 죄 10. 강도의 죄 11. 「국가보안법」에 규정된 죄 12. 「총포ㆍ도검ㆍ화약류 등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에 규정된 죄 13. 군사상 필요에 의하여 제정한 법령에 규정된 죄
현행 계엄법

이 조항은 세 가지 측면에서 치명적이다. 첫째, 군사법원의 민간인 재판을 원칙으로 하고 일반법원 이관을 예외로 규정했다. 이는 '군인이 아닌 국민은 군사법원의 재판을 받지 않는다'는 헌법 제27조 제2항을 정면으로 위반한다. 둘째, 13개에 달하는 광범위한 죄목을 군사재판 대상으로 삼았다. 내란, 외환죄부터 단순 집회·시위 관련 죄목까지 포함돼 있어 사실상 모든 정치적 반대자들을 군사법정에 세울 수 있다.


셋째, 가장 큰 문제는 재판권 이관 여부를 계엄사령관의 재량에 맡겼다는 점이다. "필요한 경우"라는 모호한 기준으로 계엄사령관이 자의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는 전두환 신군부가 1980년 김대중 등 민주인사들을 군법회의에 회부했던 그 악명 높은 조항의 현대판이다.


특히 군사법원은 계엄사령관의 지휘를 받는 군 장교들로 구성되어 공정한 재판을 기대하기 어렵다. 과거 군부독재 시절 군법회의가 얼마나 많은 민주인사들을 부당하게 단죄했는지는 역사가 증명한다. 12월 3일 계엄령 역시 이 조항을 근거로 정치인과 시민들에 대한 군사재판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제10조는 결국 '법관이 아닌 자에게 재판을 받지 않을 권리'라는 헌법상 기본권을 완전히 무력화하는 조항인 것이다.


'국회통제권 무력화' 조항의 맹점


계엄법 제4조는 겉으로는 국회의 통제를 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두 가지 치명적 결함이 있다. 하나는 행정부의 일방적 계엄 선포를 허용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국회의 계엄해제권이 다수당의 정치적 판단에 좌우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제4조(계엄 선포의 통고)
①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였을 때에는 지체 없이 국회에 통고(通告)하여야 한다.
② 제1항의 경우에 국회가 폐회 중일 때에는 대통령은 지체 없이 국회에 집회(集會)를 요구하여야 한다.
현행 계엄법

이 조항의 첫 번째 문제는 '통고'라는 표현이다. '통고'는 단순히 '알린다'는 의미로, 국회의 '동의'나 '승인'을 받도록 한 것이 아니다. 즉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한 후 국회에 단순 통보만 하면 되는 것이다. 실제로 12월 3일 계엄령도 이 조항을 근거로 국회와의 어떠한 사전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선포됐다.


더욱 심각한 것은 계엄 해제권의 실효성 문제다. 12월 3일 계엄령 당시 여당 의원들이 계엄 해제 요구에 불참했다는 사실은, 여당이 다수당일 경우 국회의 계엄 해제권이 무력화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계엄법이 다수당의 횡포를 견제하지 못하는 근본적 한계를 드러낸다. 결국 행정부가 여당의 지지만 확보하면 계엄을 무제한 연장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제4조는 입법부에 의한 행정부 견제라는 민주주의 기본원칙을 형해화한다. 국가 비상사태 시에도 의회의 실질적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현대 민주주의의 대원칙이 "지체 없는 통고"라는 형식적 절차와 다수당의 정파적 이해관계에 종속될 수 있는 것이다.


'의회 기능 정지' 조항의 위험성


현행 계엄법 제13조는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을 보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의회 기능을 무력화할 수 있는 맹점을 지닌 조항이다.

제13조(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 계엄 시행 중 국회의원은 현행범인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아니한다.
현행 계엄법

이 조항의 허구성은 세 가지 측면에서 드러난다. 첫째, 불체포특권만을 규정할 뿐 의정활동 보장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12월 3일 계엄령이 보여줬듯, 계엄사령부는 국회 출입 자체를 통제함으로써 의정활동을 전면 마비시킬 수 있다. 의원들이 체포되지 않더라도 국회 기능 자체가 정지되는 것이다.


둘째, '현행범' 예외 조항의 자의적 적용 가능성이다. 계엄사령관이 국회의원의 정치활동을 '반국가행위'로 규정하면 현행범으로 체포할 수 있다. 실제로 과거 군부독재 시절에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의원들을 '국가전복 기도 현행범'으로 규정해 체포한 사례가 있다.


셋째, 제9조의 특별조치권과 충돌한다. 계엄사령관이 "군사상 필요"를 이유로 국회의원의 거주·이전·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어, 불체포특권은 실질적 의미를 상실한다. 즉, 체포되지 않더라도 가택연금이나 통신제한 등으로 의정활동이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제13조는 의회민주주의를 지키는 듯한 외양을 갖추고 있지만, 실제로는 계엄사령관의 권한 앞에 무력화되는 장식용 조항에 불과하다. 이는 삼권분립의 근간을 흔드는 위험한 맹점이다.


'면책 불가능한 위헌성'


1997년 4월 17일, 대법원은 전두환 내란 사건(96도3376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역사적인 선언을 했다. "헌법에 정한 민주적 절차에 의하지 않고 폭력으로 헌법기관의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행위는 어떠한 경우에도 용인될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대법원은 "우리나라의 헌법질서 아래에서는 헌법에 정한 민주적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폭력에 의하여 헌법기관의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행위는 어떠한 경우에도 용인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현행 계엄법은 이러한 사법부의 준엄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위헌적 행위의 법적 근거가 될 수 있는 독소조항들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특히 계엄사령관에게 부여된 광범위한 민간인 통제 권한은 심각한 문제다. 영장 없는 체포·구금,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제한, 민간인 군사재판 회부 등 사실상 헌법이 보장한 모든 기본권을 무력화할 수 있는 권한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다.


12월 3일 계엄령은 이러한 위헌성이 현실화된 사례다. 국회의 정당한 권한 행사를 '반국가 행위'로 규정하고, 언론 통제와 의료인 강제동원까지 시도한 것은 97년 대법원 판결이 경고한 "폭력에 의한 헌법기관 권능행사 방해"의 전형이다. 특히 계엄사령관이 입법·사법·행정 전반에 걸친 초헌법적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은, 민주공화국의 근간인 삼권분립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한다.


이제는 폐지해야 할 때


75년의 역사는 계엄법이 얼마나 위험한 도구가 될 수 있는지를 반복해서 증명해왔다. 1949년 제정 이후 이승만 정권의 계엄령, 5·16 쿠데타, 유신체제, 5·17 비상계엄 확대, 그리고 2024년 12월 3일 계엄령까지, 이 법은 늘 민주주의를 압살하는 도구였다.


특히 12월 3일 계엄령은 이 법의 독소조항들이 21세기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여전히 위험한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입증했다. 국회의 정당한 권한 행사를 '내란행위'로 규정하고, 언론을 통제하며, 의료인을 강제동원하려 한 시도는 1980년 5·17 쿠데타의 데자뷰였다.


계엄법의 존재 자체가 민주헌정질서에 대한 상시적 위협이다. 자연재해나 대규모 테러와 같은 비상사태에 대비한 새로운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반드시 민주적 통제 아래 있어야 하며, 어떤 경우에도 기본권과 의회민주주의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


계엄법을 대체할 새로운 비상사태법은 △의회의 사전 동의 필수 △기본권 제한의 구체적 요건과 한계 명시 △사법적 통제 보장 △시한 명시 등 민주적 통제장치를 갖춰야 한다. 더 이상 '계엄'이라는 이름으로 민주주의가 질식당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계엄법은 군부독재 시대의 유물이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이 위험한 법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계엄법 폐지와 함께 민주적 통제가 가능한 새로운 비상사태 대응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이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요구이자, 우리 민주주의의 성숙도를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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