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사
한동훈이 극찬한 이승만의 농지개혁... 이승만이 거부권 행사한 사실은 아나? 모르나?
배기성 강사, "6.25 전쟁의 발발 배경과 전개 과정 상세 분석"
6.25 전쟁의 발발 과정과 그 배경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제시됐다. 배기성 역사 강사는 최근 강의에서 6.25 전쟁의 발발 직전 상황부터 전쟁 초기 주요 국면들을 상세히 분석했다.
농지개혁의 실상과 영향
배 강사는 특히 농지개혁의 실상에 대해 날카로운 지적을 했다. 그는 최근 한 정치인이 이승만의 농지개혁을 높이 평가한 것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1949년 6월 21일 농지개혁법이 제정됐지만, 이는 이승만의 공이 아닙니다," 배 강사는 말했다. "오히려 이승만은 당초 조봉암이 제안한 농지개혁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배 강사에 따르면, 농지개혁의 실제 주역은 초대 농림부 장관이었던 조봉암이었다. 그러나 조봉암은 후에 이승만 정권에 의해 사형당했다. "농지개혁을 주도한 사람을 사형시킨 정권을 어떻게 농지개혁의 주역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배 강사는 반문했다.
또한 그는 농지개혁이 6.25 전쟁 직전에 대부분 마무리됐다는 주장도 반박했다. "법 제정부터 실제 시행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립니다. 당시 행정력으로는 1년 안에 농지개혁을 완료하는 것이 불가능했죠."
전쟁 직전의 한반도 정세
배 강사는 1948년부터 1950년 전쟁 발발 직전까지의 상황을 집중 조명했다. 그에 따르면 1948년 4월 남북 연석회의는 한반도 정세의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김구, 김규식 등이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과 협상을 시도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로 끝났다.
주한미군 철수와 백범 김구 암살
1949년 6월 26일은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날짜로 언급됐다. 이날 오전 9시 주한미군 철수가 시작됐고, 같은 날 오후 3시 백범 김구가 암살당했다. 배 강사는 "미군 철수로 불안감을 느낀 보수 우익이 김구를 암살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일성의 전쟁 결심 과정
배 강사는 김일성이 스탈린에게 71회에 걸쳐 남침 허가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김일성은 '한강만 건너면 된다'며 전쟁 허가를 끈질기게 요청했습니다," 배 강사는 말했다. 소련의 핵실험 성공과 중국의 공산화 등이 스탈린의 결심을 바꾸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낙동강 방어선 사수의 비화
배 강사는 낙동강 방어선이 무너지지 않은 세 가지 주요 요인을 제시했다. 첫째, 동해안에서의 북한 특수부대 격퇴, 둘째, 다부동 전투에서의 승리, 셋째, 순천-마산 루트에서 학도병들의 저항이다. 특히 순천, 벌교, 여수 등지의 고등학생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
이번 강의를 통해 배기성 강사는 6.25 전쟁의 발발 과정과 초기 전개 양상을 새로운 시각에서 조명했다. 특히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들을 제시하며, 전쟁의 복잡한 배경과 전개 과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줬다. 또한 농지개혁의 실상을 지적함으로써, 한국 현대사에 대한 기존의 통념에 의문을 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