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사

6월6일 현충일은 이승만이 반민특위를 해체하고, 친일파들이 국립묘지에 묻히게 된 날

[배기성의 대한민국 근현대사]이승만과 반민특위 #2

2024-06-02 19:00:00

이승만 정권의 친일파 방조와 반민특위 와해


1949년 6월 6일은 이승만 정권이 반민족특별조사위원회를 폭력적으로 해체하고 친일파들의 면죄부를 준 날이다. 반민특위는 1948년 헌법 제101조에 근거해 구성됐지만, 이승만은 처음부터 반민특위 활동에 제동을 걸었다. 악질적인 친일파 처벌에 대해 '할 수 있다'는 임의 조항으로 헌법을 개정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장경근과 이승만의 폭력적인 반민특위 와해


내무부 차관 장경근은 일제강점기 악명 높은 친일파로 동경제대 출신의 엘리트 관료였다. 그는 경찰을 동원해 1949년 6월 6일 새벽 반민특위 사무실을 급습하고 위원들을 무장해제 시켰다. 장경근은 자신도 친일 전력으로 처벌받을 처지였기에 이승만의 폭력적인 반민특위 와해에 앞장섰다.


반민특위를 이끈 독립운동가들의 처절한 최후


반민특위를 이끈 위원장 김상덕과 부위원장 김상돈은 일제에 맞선 독립운동가였다. 이들은 가인 김병로 대법원장과 함께 친일파 처벌에 앞장섰지만 이승만 정권의 탄압으로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반민특위가 처단하려 한 친일파 대부분은 이승만의 비호로 무사할 수 있었다.


이승만의 친일파 비호, 그 배경은?


이승만은 자신의 정적을 제거하고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막강한 자금력과 조직력을 가진 친일파 세력을 필요로 했다. 이승만은 초대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부터 지역 유지였던 친일파들과 손을 잡고 정권 기반을 다졌다. 그에게 친일파 세력은 정권 유지를 위해 없어서는 안될 존재였다.


반민특위 해체 이후 벌어진 일들


반민특위 해체 이후 이승만 정권의 친일파 비호는 극에 달했다. 군경 내 친일파 숙청도 중단됐고, 친일파를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한 김병로 대법원장마저 탄압받았다. 반민특위 활동을 주도한 국회의원들은 간첩으로 몰려 구속되거나 망명길에 올라야만 했다.


'역사의 죄인'으로 기록될 이승만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을 지낸 이승만은 오랜 독립운동 경력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죄인'으로 기록될 것이다. 친일파를 비호하고 반민특위를 폭력적으로 해체한 그의 행위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다. 그가 뿌린 친일의 뿌리는 한국 현대사에 깊은 상처로 남아있다. 지금이라도 우리는 철저한 반성과 성찰로 과거를 직시하고 청산해야 한다.



최신뉴스

주요 태그

시민언론 뉴탐사 회원이 되어주세요.
여러분의 회비는 권력감시와 사법정의, 그리고 사회적 약자 보호 등을 위한 취재 및 제작에 사용되며, 뉴탐사가 우리사회 기득권을 견제할 수 있는 언론으로 성장할 수 있는 힘이 됩니다.
뉴탐사 회원가입
Image Descrip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