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7일 한덕수 국무총리를 대동하고 국민의힘 당사에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며 윤석열 대통령의 사실상 직무배제를 선언했다. 한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은 외교를 포함한 국정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며 "퇴진 전까지 국무총리가 당과 긴밀히 협의해 민생과 국정을 차질 없이 챙길 것"이라고 밝혔다.
이례적으로 총리가 당사를 찾아 여당 대표와 함께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데다, 발표 순서도 한동훈 대표가 먼저하는 등 정부와 여당의 주도권이 사실상 한동훈 대표에게 넘어간 모양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헌법상 아무런 권한이 없는 자들의 반헌법적 권력 찬탈"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주목할 점은 이 담화가 전날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직후 나왔다는 점이다. 한동훈계 의원들의 탄핵 찬성 가능성이 제기됐으나, 이들은 김건희 특검법 표결 후 본회의장을 이탈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의원총회를 열어 사실상 의원들의 셀프 감금을 통해 탄핵 표결을 저지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오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사표를 수리하고 국정원 1차장 후임 인사까지 단행하며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인사권을 행사했다. 이에 한동훈 대표는 "대통령이 이상민 장관의 사의를 수용한 것은 적극적인 직무 행사로 보기 어렵다"며 해명에 나섰으나,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한동훈이 대통령 놀이를 한다"는 비난이 나오는 등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야권에서는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1차 내란에 이어 12월 7일 한동훈 대표와 한덕수 총리의 2차 내란이 발생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권력 이동의 결정적 계기
계엄 당시 체포 대상이었던 한동훈 대표가 12월 3일 국회로 달려가 비상계엄 해제에 참여한 행보도 새로운 해석이 나온다. 자신의 체포 위험이 있는 계엄은 적극적으로 저지하면서, 이를 기회로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 위기에서 구해주는 방식으로 실질적 권력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특히 민주당이 매주 윤석열 탄핵소추안을 발의하겠다고 예고한 상황에서, 한동훈 대표는 결정적인 카드를 쥐게 됐다. 국민의힘 108석 중 한동훈 대표가 움직일 수 있는 18표로 윤석열 대통령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92석을 확보한 야권이 탄핵소추안 가결에 필요한 200석을 달성하려면 여당에서 8표만 이탈하면 되는 상황. 계엄 사태로 이미 식물 대통령이 된 윤석열 대통령을 상대로 한동훈 대표는 탄핵이라는 강력한 협상 카드를 손에 쥐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갑작스럽게 계엄을 선포한 배경에 대한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검찰 내부 친윤·친한 세력 간 갈등이 계엄 선포의 근본 배경이었다는 것이다. 특히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수사와 명태게이트를 둘러싼 검찰 라인의 교체가 핵심 도화선이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검찰 조직의 지각변동과 정치적 해법으로서의 계엄
올해 5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수사를 맡았던 서울중앙지검 수사진이 대거 교체됐다. 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과 1·3·4차장 검사들이 자리에서 물러났는데, 이들 대부분이 한동훈 대표와 가까운 인물들이었다. 검찰 조직이 윤석열 대신 한동훈 쪽으로 기울기 시작한 결정적 계기였다.
이후 명태게이트 수사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됐다. 11월 7일 윤석열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열어 "명태균은 대선 경선 과정에서 손절했고, 부인 김건희는 시중의 이야기를 전하며 내조한 것"이라며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후 공개된 녹취록들은 마치 의도된 것처럼 한동훈 대표의 정적들을 겨냥했다.
녹취록 공개 초기에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도마 위에 올랐고, 이어 차기 대권 주자로 거론되는 홍준표 대구시장까지 연루 의혹이 제기됐다. 계엄 직전에는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마저 논란의 중심에 섰다. 한동훈 대표의 유력 정적들이 하나둘 명태게이트에 휘말리는 동안, 정작 청담동 술자리 의혹의 중심에 있던 한동훈 대표는 의문스럽게도 논란에서 비켜나 있었다.
계엄 합수부를 통한 검찰 견제와 한동훈 제거 시도
더욱 충격적인 내용이 추미애 의원을 통해 공개됐다. 방첩사령부가 작성한 계엄 문건에는 1980년 5·17 비상계엄 포고령을 그대로 본떠 만든 내용이 담겼다. 특히 주목할 점은 문건의 상당 부분이 합수부 설치와 운영에 할애됐다는 점이다. 영장 없는 체포·구금이 가능한 합수부를 통해 한동훈 쪽으로 기운 검찰을 무력화하려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의 증언은 이런 정황을 뒷받침한다. 그는 조태영 국정원장이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이재명·박찬대 의원과 함께 한동훈 대표 체포 지시를 받았다고 밝혔다. 야권 인사들과 함께 여권 실세인 한동훈이 체포 대상에 포함된 점은 이번 계엄이 단순한 정치적 탄압을 넘어 검찰 장악을 위한 시도였음을 보여준다.
검찰의 내란 수사 장악 움직임
현재 내란 수사를 맡은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한동훈 대표와 밀접한 관계인 인물들로 구성됐다. 특수본부장인 박세현 서울고검장은 한동훈 대표의 현대고 후배다. 박세현 검사의 부친인 박순용 전 대검 총장과 한동훈 대표의 장인인 진형구 전 대전고검장은 검찰 시절 막역한 사이였다.
특수본 2인자인 김종우 남부지검 2차장은 최순실 특검 당시 한동훈 팀에서 태블릿PC 조작 의혹을 받았던 검사다.
내란 수사권 쟁탈전
검찰은 7일 새벽 1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긴급체포하며 수사 주도권 선점에 나섰다. 김 전 장관이 탄핵소추안 부결 직후 자진 출석을 요청하고 언론에도 출석 계획을 알린 점은 검찰과의 사전 조율 가능성을 시사한다.
경찰 국가수사본부는 검찰의 이러한 행보에 반발해 합동수사를 거부했다. 경찰은 검찰이 직접 수사권이 없는 내란죄를 직권남용 혐의로 수사해 전환하려는 것은 공소기각 사유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8일 수사의 공정성 확보를 위해 특검 도입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는 한동훈 대표와 긴밀한 관계에 있는 검찰이 주도하는 내란 수사의 공정성에 대한 우려를 반영한 조치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