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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의 당권장악과 김건희 특검법...尹이 계엄을 택한 진짜 이유

한동훈계 의원 8표만 이탈해도 특검법 통과...군 지휘부 장악해 막으려 했다

2025-01-30 07:21:27

내란의 도화선은 63%였다. 2024년 7월 23일, 한동훈이 국민의힘 당대표로 당선되며 기록한 득표율이다. 윤석열은 이 숫자 앞에서 전율했다. 당과 검찰을 모두 장악한 한동훈이 김건희 특검법을 통과시킬 수 있는 '절대반지'를 끼게 된 순간이었다. 계엄의 시나리오가 본격화된 것도 바로 이때부터다.


노상원, 문상호 등 내란 공범들의 공소장은 윤석열이 계엄을 선택한 진짜 이유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이 헌재에서 주장한 '야당의 입법 독주 견제'가 아닌, 한동훈의 견제와 김건희 방어를 위한 극단적 선택이었다.


한동훈의 당권 장악이 결정적 계기


계엄의 직접적 배경은 한동훈의 예상을 뛰어넘는 압도적 당권 장악이었다. 2024년 7월 23일, 한동훈은 63%라는 충격적 지지율로 국힘 당대표에 당선됐다. 윤석열은 비대위원장으로 한동훈을 기용할 때만 해도 자신의 충실한 후계자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한동훈은 당대표가 되자마자 "국민 눈높이에서 생각할 문제"라며 김건희 특검법에 대한 압박의 수위를 높였다.


특히 심각했던 것은 한동훈이 당권과 검찰권을 동시에 손에 쥐게 된 점이었다. 검찰 내 동기·후배들은 미래 권력으로 떠오른 한동훈 쪽으로 급속히 쏠렸다. 여당 내 한동훈계 의원 20여명 중 8표만 이탈해도 김건희 특검법이 통과될 수 있는 상황. 당대표 한동훈의 입만 보고 있는 이 의원들이 언제든 등을 돌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결국 계엄의 방아쇠를 당기게 된다.


계엄 라인업의 시작


계엄 주요 인물들의 라인업은 2023년 11월에 시작됐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17.7% 차이로 참패한 직후, 윤석열은 군 수뇌부에 주목할만한 인사를 단행했다. 11월 6일 여인형 방첩사령관, 이진우 수방사령관, 곽종근 특전사령관을 임명했고, 3일 뒤 문상호 정보사령관까지 임명하며 '계엄 4인방'의 진용을 갖췄다. 군 내부에서는 특히 방첩사령관에 여인형을 임명한 것이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방첩사령관이 통상 마지막 보직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안가에서의 은밀한 모의


공소장은 윤석열이 2024년 3월 말에서 4월 초, 총선을 앞두고 안가에서 신원식 국방부장관, 조태용 국정원장, 여인형 방첩사령관, 김용현 경호처장을 불러모아 "비상대권을 통해 헤쳐나가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고 적시했다. 4월 중순에는 김용현 경호처장 공관에서 여인형, 곽종근, 이진우를 만나 "반국가 세력들 때문에 나라가 어려움이 있다"며 계엄을 언급했다. 이미 총선 전부터 계엄 가능성을 타진했던 것이다.


검찰과 당의 장악력 상실


2024년 4월 총선에서 여당이 참패하며 윤석열의 입지는 급격히 좁아졌다. 범야권이 192석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두자 검찰도 흔들렸다. 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이 김건희 소환조사를 시도하다 사임한 사건은 검찰 통제력 상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특히 7월 국힘 당대표 선거는 윤석열에게 충격적인 결과를 안겨줬다. 김건희 씨가 1월에 보낸 사과 문자를 한동훈이 '읽고 답장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폭로되자, 대통령실은 한동훈의 낙선을 위해 전방위적 압박을 가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한동훈은 63%라는 압도적 지지로 당선됐고, 당선 직후 "김건희 (콜검) 조사가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았다"며 대통령실을 정면으로 공격했다. 검찰 내부에서도 미래 권력으로 떠오른 한동훈 쪽으로 줄서기 현상이 가속화됐다.


계엄 실행 계획의 구체화


노상원의 공소장에 따르면, 윤석열은 2024년 8월 초 안가에서 김용현, 여인형과 저녁식사를 하며 "비상대권이나 비상조치가 아니면 나라를 정상화할 방법이 없다"며 개입을 거론했다. 이때부터 계획은 속도를 냈다. 노상원은 9월부터 11월까지 무려 22차례나 김용현의 관저를 방문했다. 11월 9일에는 안산의 한 커피숍에서 문상호를 만나 "조만간 계엄이 선포될 것"이라며 "제2수사단이 구성될 텐데 내가 단장을 맡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건희 특검법 재의결 앞둔 결정적 순간


11월 말, 김건희 특검법 재의결을 앞둔 시점이 계엄 결행의 분수령이었다. 11월 24일부터 김용현 주도로 계엄 선포문과 포고령 초안 작성이 시작됐다. 공소장에 따르면 곽종근은 12월 1일 특전사령부에 영내 대기 지시를 내렸고, 선관위와 민주당사 등에 대한 점령 계획까지 수립했다. 김용현은 11월 30일 여인형에게 "더 이상 이 난국을 두고 볼 수 없다. 국회를 계엄으로 통제하고 선관위와 여론조사기관 등의 부정선거 증거를 밝혀내면 국민들도 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충격적인 것은 계획의 치밀함이다. 2023년 11월 군 장성 인사에서부터 2024년 8월 검찰총장 인선, 국방부장관 임명까지 모든 것이 계엄을 위한 포석이었다. 공소장에 드러난 증거들은 이 계엄이 야당의 입법 독주를 막기 위해서가 아닌, 김건희를 지키고 한동훈을 제거하기 위한 충격적 선택이었음을 보여준다. 이는 대통령의 권한을 사적 이익을 위해 남용한 헌정사 최악의 내란 사건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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