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사

이승만과 전쟁범죄 - 대전 골령골을 킬링필드로 만든 한국의 '아이히만'은그후 동아대 설립자와 성신여대 이사장이 됐다

2024-06-30 20:00:00

한국전쟁 초기 민간인 학살, 70년 만에 드러나는 진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직후 대전과 전주 등지에서 대규모 민간인 학살이 자행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고 있다. 최근 유해 발굴 작업과 증언을 통해 그 실상이 드러나면서 역사적 진실 규명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전 골령골의 비극


대전 산내동 골령골은 한국전쟁 당시 최대 규모의 민간인 학살 현장으로 알려졌다. 1950년 7월 1일부터 17일까지 약 3,000여 명의 민간인이 집단 처형된 것으로 추정된다. 희생자들은 주로 대전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던 사상범과 보도연맹 가입자들이었다.


최근 유해 발굴 작업 결과, 예상을 뛰어넘는 규모의 유해가 발견되었다. KBS 보도에 따르면 굴삭기로 땅을 파내자 수천 구의 유해가 한꺼번에 드러났다고 한다. 이는 당시 학살의 규모와 잔혹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다.


전주형무소 사건의 실체


전주에서도 유사한 비극이 벌어졌다. 1950년 6월 말부터 7월 20일까지 전주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던 1,400여 명의 재소자들이 집단 희생된 것으로 알려졌다. 희생자들은 주로 여순사건 연루 혐의자와 좌익 사상범들이었다.


특히 전주형무소 사건은 두 차례에 걸쳐 학살이 이루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국군에 의한 1차 학살 이후, 북한군이 점령했을 때 다시 800여 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전쟁 중 벌어진 민간인 학살의 복잡한 양상을 보여주는 사례다.


학살 명령 체계와 책임자들


이번 사건의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학살이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을 정점으로 하는 명령 체계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법무장관 이우익, 내무부장관 백성욱, 헌병대장 송요찬 등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대전지검장이었던 정재원 검사와 헌병대 심용현 중위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실제 학살 명령을 하달하고 집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놀랍게도 이들은 후에 각각 동아대학교 설립자와 성신여자대학교 이사장이 되어 교육계에서 활동했다.


미군의 개입 의혹


미군 문서에 따르면, 당시 미군도 이 사건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제25사단 CIC 파견대의 전투일지에는 "1950년 7월 1일 보고에 따르면 민간인 1,400명이 경찰에 의해 살해됐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는 미군이 적어도 학살 사실을 알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진실규명과 역사적 평가


이번 사건은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장면을 다시 한번 조명하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를 전쟁 중 벌어진 민간인 학살로 규정하고, 철저한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당시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최근 서울시의회에서 오세훈 시장은 "모든 역사적 인물은 공과가 있다"며 균형 잡힌 역사 인식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한국 사회는 과거사 청산과 역사적 평가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를 시작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희생자들의 명예 회복과 함께, 이러한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교훈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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