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인사이트

백년 동안의 고독, 그리고 '죽은' MZ세대의 사회

2024-07-14 04:13:19

권윤지의 '100년 동안의 고독': 세대를 관통하는 자아 성찰의 여정


권윤지 작가가 진행하는 '아트인사이트' 방송이 5회를 맞았다. 이번 방송에서 권 작가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 '100년 동안의 고독'을 모티브로 자신의 가족사와 개인적 경험을 풀어냈다. 그녀는 할아버지 세대부터 아버지, 그리고 자신에 이르는 3대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 사회의 변화와 개인의 성장 과정을 조명했다.


가문의 굴곡, 개인의 성장


권 작가의 할아버지는 유신 시대 군법 재판을 담당한 판사였다. 그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였으며,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누렸다. 그러나 이러한 가문의 배경은 권 작가에게 복잡한 감정을 안겼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기득권에 대한 의문과 부채감을 동시에 느꼈다고 한다.


권 작가의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모색한 인물이다. 서울법대를 졸업하고 사법고시를 준비했지만, 법관의 길을 가지 않았다. 대신 그는 공익을 위한 삶, 유엔에서 일하거나 한의학을 연구하는 등 순수한 꿈을 품었다. 그러나 가문의 기대와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며 오랜 시간 사시 공부를 했고, 이 과정에서 가문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권 작가는 아버지와 특별한 유대관계를 형성했다. 그녀는 "아버지랑 이제 거의 모든 걸, 뭐 사생활, 뭐 이런 거는 막 아니지만 모든 걸 공유하는 사이"라고 말했다. 특히 중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아버지와 함께 집 근처 공원을 산책하며 깊은 대화를 나눴다. 이 시간 동안 아버지는 자신의 삶과 선택, 그리고 사회에 대한 생각을 딸과 공유했다.


아버지의 정의감과 비판적 사고는 권 작가의 가치관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녀는 "아버지 덕분에 저는 이제 깨어날 수가 있었죠"라고 말하며, 아버지가 매일 저녁 뉴스를 보며 사회 문제에 대해 비판적으로 논평하던 모습을 회상했다. 때로는 식사 중에도 불의한 판결에 대해 즉석에서 판결문을 써내려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권 작가는 사회 정의에 대한 민감성을 키웠다.


특히 아버지는 딸에게 독특한 가르침을 주었다. "돈을 못 벌어도 좋으니까, 반드시 너의 이름이 걸린 일을 해라"라는 조언은 권 작가의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이는 단순히 성공이나 출세를 강요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에 따라 살아가라는 메시지였다.


아버지의 이런 영향으로 권 작가는 기득권의 굴레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아버지를 통해 주체적인 삶의 중요성을 배웠고, 이는 그녀가 현재 권력과 사회 구조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게 된 근원이 되었다. 권 작가의 아버지는 그녀에게 단순한 부모를 넘어, 정신적 스승이자 동반자로서의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권 작가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 전우원 씨의 고백에 깊은 공감을 표현했다. 그녀는 "전우원 씨 인터뷰를 전체 다 봤어요. 한 네 번쯤 혼자 방에서 문 닫고, 문 걸어 잠그고 보고, 술 먹고 울었어요"라고 말했다. 이는 자신의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복잡한 감정, 그리고 가문의 역사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여준다.


교육 시스템의 한계와 개인의 저항


권 작가는 예원학교와 서울예고를 거쳐 이화여대에 진학하는 한국의 전형적인 예술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그녀는 한국 교육 시스템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직접 경험하고 날카롭게 비판했다.


예원학교 시절, 권 작가는 학교가 표방하는 '예술 교육'이 실제로는 입시를 위한 기술 훈련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우리가 학문과 예술이라고 여기고 익히고 배우고, 돈을 지불했던, 그러한 내용들은 철저하게 일차적으로는 입시를 통한 기득권 유지"를 위한 것이었다고 비판했다.


서울예고에 진학한 후에는 이러한 문제가 더욱 심화되었다. 권 작가는 학교가 진정한 예술 교육이 아닌, 대학 입시를 위한 '공장'으로 전락했다고 느꼈다. 그녀는 "실기로 배우는 것들도 이미 일제로부터 들어와서 우리나라 안에서 유형화된 어떤 것들을 계속 세뇌시키는 작업"이라고 지적했다. 더불어 경쟁 중심의 학교 문화가 학생들의 정신 건강을 해치고, 진정한 예술적 성장을 방해한다고 보았다.


특히 서울예고 시절, 권 작가의 저항은 절정에 달했다. 그녀는 "학교는 죽었다"고 선언하며, 수업을 거부하고 학교 뒷산의 소나무와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는 단순한 반항이 아닌, 죽어있는 교육 시스템에 대한 깊은 성찰의 결과였다. 그녀는 "선생님도 죽었고, 책도 죽었고, 실기도 죽었고, 그다음에 입시도 죽었고, 다 죽어 있고. 그 죽은 시스템 안에서 단 한 발짝이라도 나아가면, 마치 그 죽음의 에너지와 섞일 것만 같아"라는 공포를 느꼈다고 말했다.


권 작가의 저항은 결국 학교와의 갈등으로 이어졌고, 그녀는 서울예고 사상 초유의 사태로 전공 수업에서 퇴출되는 경험을 했다. 그러나 이 경험은 오히려 그녀에게 교육의 본질과 예술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권 작가는 한국의 교육 시스템이 학생들의 창의성과 비판적 사고를 억압하고, 단순히 입시와 경쟁을 위한 도구로 전락했다고 결론지었다. 그녀의 저항은 개인의 반항을 넘어, 한국 교육의 근본적인 변화와 개혁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행동이었다.


세대 간 갈등과 연대의 가능성


권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현재 20-30대가 처한 상황을 해석했다. 그녀는 이 세대가 극심한 경쟁 속에서 자아를 잃어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스펙 쌓기에 몰두한 나머지 진정한 사유와 성찰의 기회를 갖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했다.


방송에서는 이전 세대의 책임도 언급됐다. 민주화를 경험한 586 세대가 결과적으로 현재의 20-30대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출연진들은 세대 간 이해와 연대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죽어있는 사회를 살아있는 사회로 바꾸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데 공감했다.


방송의 마무리에서 권 작가는 자신의 개인사를 통해 느낀 점을 공유했다. 그녀는 "우리 또래들도 반드시 길을 찾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라며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했다. 또한 "혼란스러운 사회,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그걸 뚫고 왔고, 현재를 맞이했고, 그 모든 과정을 한 인간으로서 제 안에 담고 반추하고 공감하고, 하면서 저는 정의의 길을 찾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아트인사이트' 방송은 한 개인의 성장 과정을 통해 한국 사회의 변화와 세대 간 갈등, 그리고 미래에 대한 고민을 담아냈다. 권윤지 작가의 솔직한 고백과 날카로운 통찰은 시청자들에게 깊은 공감과 성찰의 기회를 제공했다. 앞으로도 그녀의 방송이 우리 사회에 필요한 담론을 이끌어내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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