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의 이례적 방한과 일본의 '강력한 의지'
임기 종료가 한 달도 남지 않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갑작스러운 방한이 외교가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아무리 셔틀외교라고 하더라도 퇴임을 목전에 둔 총리의 이 같은 방문은 이례적이다. 그러나 국내 언론에서는 이 방문의 진정한 의도와 배경을 제대로 짚어내지 못했다.
이번 방문의 실마리는 외신 보도에서 찾을 수 있었다. 로이터 통신은 일본 외무성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일본은 양국 관계를 '더 역동적인 단계'로 발전시키고 싶다(Tokyo wants to broaden ties to reach a "more dynamic phase", a Japanese foreign ministry official told a briefing, without elaborating.)"고 보도했다.
더욱 주목할 만한 것은 로이터가 인용한 한국 정부 고위 관리의 발언이다.
Kishida made a 'strong request' to see Yoon a final time before he leaves office, the South Korean official said.
(한국 관리는 기시다가 퇴임 전 윤 대통령을 마지막으로 만나기 위해 '강력한 요청'을 했다고 말했다.)
이는 일본 측이 이번 방문을 강력히 원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그렇다면 일본이 이토록 서두른 이유는 무엇일까? 그 해답은 이번 방문의 핵심 의제인 '재외국민보호협력 양해각서' 체결에 있다.
NHK는 이 양해각서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전했다:
This will be the first time that Japan will sign a memorandum regarding the evacuation of its citizens from third countries.
(이는 일본이 제3국에서의 자국민 대피와 관련된 양해각서를 체결하는 첫 사례가 될 것이다.)
표면적으로 이 양해각서는 제3국에서 위기 상황 발생 시 양국 국민 철수를 위한 협력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이면에는 일본의 전략적 계산이 숨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일본의 지정학적 위치를 고려하면, 분쟁 발생 가능성이 있는 지역은 한국보다 일본과 더 멀리 떨어져 있다. 즉, 이 협력이 더 필요한 쪽은 일본이다. 이는 두 가지 중요한 시나리오를 고려할 때 더욱 분명해진다.
첫째, 대만 유사시 상황이다. 만약 대만에서 분쟁이 발생하면, 이 양해각서에 따라 한국군이 일본인 구출을 위해 투입될 가능성이 있다. 이는 한국을 원치 않는 지역 분쟁에 연루시킬 수 있으며, 중국과의 관계를 심각하게 악화시킬 수 있는 사안이다.
둘째, 북한 관련 상황이다. 북한에서 급변 사태가 발생할 경우, 이 양해각서는 일본에게 한반도 파병의 명분을 제공할 수 있다. '자국민 보호'라는 명목 하에 일본 자위대가 한반도에 개입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이는 한국의 주권과 안보에 직접적인 위협이 될 뿐만 아니라, 북한과의 관계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더욱이 일본의 최근 군사력 증강 움직임을 감안하면, 이 양해각서가 일본의 군사적 역할 확대를 위한 포석일 가능성이 높다. 결과적으로 이 양해각서는 한국을 둘러싼 복잡한 동북아 정세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고, 중국 및 북한과의 관계를 동시에 악화시킬 수 있는 위험한 합의인 것이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이 양해각서가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파병에 대한 명분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제3국에서의 자국민 보호'라는 명목 하에, 향후 한반도 유사시 일본 자위대가 개입할 수 있는 법적, 외교적 근거가 마련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한국의 안보 주권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정부는 이를 국민적 합의나 충분한 논의 없이 신속하게 추진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자국 언론을 통해 관련 정보를 사전에 공개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해 사전에 어떠한 정보도 공개하지 않았다.
결국 이번 방문은 일본의 강력한 의지와 한국의 침묵 속에서 이루어졌다. 이는 향후 한일 관계의 방향성과 양국 간 역학 관계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과연 이번 양해각서 체결이 한국의 국익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리고 한국 정부의 이러한 대응이 적절했는지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윤석열 정부의 대일 외교, 국익을 저버린 '굴종 외교'의 민낯
이번 양해각서 체결 과정에서 드러난 윤석열 정부의 대일 정책은 국민 정서와 크게 괴리되어 있다. 로이터가 인터뷰한 한국 고위 관리의 발언은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The South Koreans hope for conciliatory comments from Kishida about Koreans forced to work for Japan during its occupation, but even without these the visit could help to keep "shuttle diplomacy" on track, he said."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 측은 물론 기시다 총리가 일제 강점기 강제 동원 피해자들에 대해 화해의 메시지를 전하길 바라고 있다. 하지만 그런 언급이 없더라도 이번 방문 자체만으로 양국 간 '셔틀 외교'를 지속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even without these(그런 언급이 없더라도)"라는 표현은 한국 사회의 정서와 완전히 동떨어진, 충격적인 내용이다. 이는 피해자인 한국이 가해자인 일본의 사과나 반성 없이도 관계 개선을 추진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의 강제 동원은 한국인들에게 여전히 아물지 않은 상처다. 이에 대한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배상은 많은 한국인들이 오랫동안 요구해 온 사항이다. 그러나 이 발언은 그러한 국민적 정서는 물론 대법원 판결까지 완전히 무시한 채, 단순히 외교적 편의를 위해 역사적 정의마저 포기할 수 있다는 듯한 인상을 준다.
더욱이 이는 외교적으로도 매우 위험한 접근이다. 가해자의 사과 없이 관계 개선을 추진하겠다는 것은 향후 일본과의 모든 협상에서 한국의 입지를 크게 약화시킬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외교적 실수를 넘어, 국가의 존엄성과 국민의 자존심을 훼손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이 발언은 윤석열 정부의 대일 정책이 얼마나 국민 정서와 괴리되어 있는지, 그리고 역사적 정의와 국익을 얼마나 가볍게 여기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라 할 수 있다.
김태효 차장의 모순된 발언과 정부의 불투명한 소통
정부 내부의 모순된 입장과 불투명한 소통 방식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공식 브리핑에서 "우리 측이 먼저 한일 공조를 제도화하자고 제안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다.
연합뉴스는 9월 3일, 한일 양국이 제3국 분쟁 시 국민대피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주목할 점은 이 보도의 출처가 한국 정부가 아닌 일본 닛케이 신문이라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이렇게 중요한 사안을 회담 전에 공개하지 않았다.
일본 언론들은 한일 정상회담 전에 이미 양해각서 체결 계획을 구체적으로 보도했다. NHK와 닛케이 신문 등은 제3국에서의 위기 상황에 대비한 양국 간 협력 메커니즘에 대해 상세히 언급했다. 반면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해 어떠한 공식 입장도 밝히지 않았다.
만약 김태효 차장의 주장대로 한국이 먼저 이 양해각서를 제안했다면, 왜 우리 정부가 아닌 일본 언론을 통해 이 사실이 알려졌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이는 김태효 차장의 공식 발언과 실제 상황 사이의 심각한 불일치를 보여준다.
이러한 모순된 태도는 한국 국민 정서를 고려한 전략적 선택일 가능성을 시사한다. 일본에 일방적으로 양보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한 조치로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정부의 대일 정책에 대한 의구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중요한 외교적 결정을 둘러싼 이러한 불투명한 태도는 국민의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정부가 중요한 외교 사안에 대해 국민과 소통하지 않고, 오히려 사실을 은폐하려는 듯한 모습은 향후 대일 정책 추진에 있어 큰 장애물이 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소통의 문제를 넘어, 정부의 외교 정책 전반에 대한 신뢰성 문제로 확대될 수 있는 심각한 사안이다.
한일 양해각서와 한국 외교의 딜레마: 전략적 모호성의 중요성
이번 양해각서 체결은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인도주의적 협력을 표방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동북아 지역의 세력 균형을 뒤흔들 수 있는 잠재력을 내포하고 있다.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는 필연적으로 북한의 반발을 야기할 것이며, 이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
한국은 경제적으로 중국과, 안보적으로 미국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독특한 위치에 있다. 이는 때로는 딜레마로 작용할 수 있지만, 동시에 전략적 유연성을 제공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한국은 이러한 위치를 활용해 동북아 지역에서 균형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번 양해각서는 이러한 전략적 균형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일본과의 안보 협력 강화는 미국 주도의 안보 체제에 한국이 더 깊이 편입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는 중국과의 관계에 새로운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복잡한 상황에서 전략적 모호성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된다. 전략적 모호성은 한국이 강대국 간의 갈등에 직접적으로 연루되는 것을 방지하고, 외교적 유연성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전략이다. 어느 한 쪽에 명확히 줄을 서는 순간, 한국은 원치 않는 분쟁에 휘말릴 위험에 처하게 된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접근 방식에는 아쉬운 점이 많다. 중요한 외교적 결정을 은밀히 진행한 점, 그리고 공식 입장과 비공식 입장 사이의 불일치는 정부의 신뢰도에 타격을 주고 있다.
결국 한국의 진정한 국익은 강대국 사이에서 독자적인 전략적 가치를 창출하는 데 있다. 이는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으면서도 한국의 목소리를 분명히 낼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면서도 국민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가 될 것이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의 "중요한 것은 일본의 마음"이라는 발언은 현 정부 외교 정책의 혼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태도가 한국 외교의 나침반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일본의 마음이 아닌, 한국의 국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