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방울그룹 대북송금 사건 재판의 판도를 뒤집을 수 있는 충격적인 증언이 나왔다. 2년여간 강진구 기자와 신뢰관계를 쌓아온 임필순 씨의 36분 2초 분량의 통화 녹음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무죄를 입증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가 담겨있다. 통화 녹취록의 내용은 당시 공시자료 등 객관적 증거와 대조 검증을 거쳐 그 신빙성이 확인됐다. 임필순 씨는 자유당 시절 실세 정치인이었던 임철호 전 농림부 장관의 넷째 딸이자 천억대 자산가로, 김성태 쌍방울그룹 회장이 "어머니"라고 부르는 수양어머니다.
지난 5월 29일 오전 10시경 임필순 씨는 강진구 기자와의 통화에서 그동안 털어놓지 않았던 쌍방울 대북송금의 실체를 밝혔다. 하지만 일주일 후 강진구 기자가 방송에서 통화 내용 중 일부를 언급하자, 임필순 씨는 강한 배신감을 표출하며 강진구 기자와 그 가족에 대한 협박을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진구 기자는 오는 31일로 예정된 이화영 전 부지사의 결심 공판을 앞두고 진실을 밝히는 것이 옳다고 판단해 이 증언을 공개하기로 했다.
검찰 주장과 전혀 다른 대북송금의 실체
임필순 씨는 이재명 대표와 쌍방울의 관계를 명확히 부인했다.
이재명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요? 쌍방울이 말도 안 되는 소리죠... 사실은 얼굴도 한 번 본 일도 없고 사실은 통화도 안 했답니다.임필순 통화 녹취록 발췌(2024.5.29)
특히 이 사실을 강조하면서 "알아요, 나는. 알아요. 그러니까 그 얘기 지금 하면 안 돼요. 쟤가 좀 불리하게 되니까... 그게 진실이라고요"라며, 김성태가 검찰 수사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허위 진술을 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검찰은 대선 당시 쌍방울그룹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변호사비 20억 원을 대납했다고 주장하다가, 2023년 1월 중순 김성태 회장을 태국 방콕에서 체포한 이후 수사 방향을 급선회했다. 이재명 대표의 방북 비용을 대가로 북한에 자금을 송금했다는 새로운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기업 압박을 통한 검찰의 강요
임필순 씨는 김성태 회장이 검찰의 압박으로 허위진술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검찰이 '10년, 20년을 살고 나오면 회사는 다 망하는 것 아니냐'며 압박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쌍방울의 핵심 기업인 나노스(현 SBW생명공학)는 호재성 공시 발표 하루 전날 거래가 정지되는 등 기업 운영의 '멱줄'이 잡혀있는 상태다.
임필순 씨는 김성태가 변호사 선임 과정에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어떤 법무법인에서는 기업 관련 건을 전부 맡아주겠다며 100억을 요구했다"면서 "한때는 조 단위까지 갔지만 지금은 현금이 10억도 없다"고 말했다.
쌍방울 대북사업의 목적은 '北 희토류 자원 선점'
임필순 씨는 쌍방울의 대북사업이 북한의 희토류 자원을 선점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밝혔다. "북한에 희토류 매장량이 많다"며 "이게 절대적인 재료인데, 우리나라는 하나도 안 나오고 중국에서만 나온다"고 설명했다. 텔레비전을 비롯한 첨단 제품에 들어가는 희토류의 특성에 대해 "가늘고 얇고 가볍고 강한" 소재라고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이를 위해 쌍방울은 중국에 거점을 마련했다. "김정은이 미국과도 잘 나가고 우리나라도 만나던 시기라 사업 선점을 위해" 중국에 사무실을 설치하고 최우향을 책임자로 배치했다는 것이다. 주목할 점은 최우향의 존재다. 그는 대장동 개발 의혹의 핵심 인물인 김만배의 '헬멧맨'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2022년 10월 서울구치소에서 구속영장이 기각된 김만배를 차량까지 안내한 뒤 오토바이를 타고 사라져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임필순 씨는 "최우향이 성균관 부관장을 지내며 사교성이 좋아 인맥 관리를 했다"며 "누구에게나 어필을 잘하고 사교성이 있어서 모두가 배려해주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희토류 개발을 위한 두 축과 주가조작 의혹
쌍방울의 대북사업은 두 개 기업을 통해 구체화됐다. 마그네사이트 첨단 가공기술을 보유한 장원테크와 매장량 측정 기술을 가진 KH건설이 그 축이다. 임필순 씨의 조카들은 2년에 걸쳐 장원테크 인수를 추진했다. "베트남 공장까지 가서 실사하고, 감정평가와 실사비용으로 9억 원까지 들였다"고 밝혔다.
임필순 씨의 증언과 당시 공시 기록을 대조해본 결과, 주가 변동이 정확히 일치했다. 7,000원대였던 장원테크 주가는 2018년 7월 인수설이 나돌면서 13,000원까지 급등했다. "특허권 취득 공시 발표를 앞두고 계약서까지 썼는데, 하루 전날 결렬됐다"는 증언대로 당시 주가는 급락했다.
임필순 씨는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그때 7천 주식이 7천 4백 원, 5백 원 할 때 기억해요? 그래서 이 절충을 하는데 1년 정도 걸렸어요...그랬는데 그때 출원이 되어서 특허가 나왔어요. 금융기업에 7월 말인가 이렇게...만삼천 얼마인가 불나듯이 스파크를 일으키더라고요. 내일 이제 발표하는 거야. 그런데 그 전날 계약서 쓰고, 그 다음날 공시 뜰 건데...딱 거기서 버텼어요.임필순 통화 녹취 중 발췌(2024.5.29)
이런 주가의 급격한 변동은 전형적인 주가조작의 양상을 띠고 있다. 인수설과 특허권 취득 공시라는 호재성 정보를 활용해 주가를 끌어올린 뒤 차익을 실현하는 수법으로 보인다.
이후 공시 자료에 따르면, 장원테크는 2019년 1월 삼본전자(현 KH전자)와 리치투자조합이 공동 인수했다. 임필순 씨는 "그 회사에서 우리와 함께 하자는 제안이 와서 2019년 2월 KH건설을 580억 원에 같이 샀다"고 증언했다. 이 역시 당시 공시 내용과 일치한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임필순 씨가 장원테크 주가 변동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7,000원대로 떨어졌던 주가는 2019년 1월 최종 인수 계약 체결 시점에 3만원대까지 치솟았는데, 임필순 씨는 이 과정에서 내부 정보를 활용한 정황을 스스로 털어놨다.
그때 내가 세영이네를 그 주식을 사기 시켰거든요. 그랬는데 내일 이제 발표하는 거야... 그날 좀 내렸다가 이러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6시 넘어 7시쯤 돼서 양재천을 걷다가 전화해가지고, 그거 엄청 올라가더니 왜 내렸다 또 올라가? 이렇게 물어봤어요. 세영이네가 시켰으니까 계속 그래서 돈을 좀 벌었어요.임필순 통화 녹취 중 발췌(2024.5.29)
이처럼 임필순 씨는 주가 변동 시점마다 지인들에게 매수를 권유했고, 공시 발표 전날의 주가 움직임까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화영은 '보험용' 사외이사였다
임필순 씨는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영입 배경도 설명했다. "사업하려면 거미 발처럼 이 계통 저 계통 다 보험을 들어야 한다"며 "그냥 보험 드는 거예요. 일종의 돈 섭외비 주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증언했다. 실제로 쌍방울은 이화영 외에도 검찰 출신들을 다수 사외이사로 영입했다.
"이화영을 사외이사로 쓰다 보니 이것저것 거쳤고, 그러다 평화부지사가 됐죠. 그러다 보니 그냥 얽히고설켜 이재명과 연결된 것처럼 됐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재명에 20억 줬다고? "돈 1원도 아끼는 사람인데 말이 되나"
임필순 씨는 김성태 회장과의 각별한 관계를 증언하며 검찰의 변호사비 대납설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스님, 어머니 안 보고 가실랍니까"라며 찾아올 정도로 김성태는 임필순 씨를 각별히 따랐다고 한다. 상황에 따라 "어머니", "스님", "이모" 등 다양한 호칭으로 부르며 존경심을 표했다는 것이다.
특히 김성태의 성장 과정과 성격을 상세히 전했다. "전라도에서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하고 퇴학당했지만, 사업 수완이 좋고 판단력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평했다. 그러면서도 "천만 원도 아낄 때는 딱 부러지게 아끼는 스타일"이며, "신세 진 것에 대해서도 조건 없이 주는 건 하나도 없고, 성과가 있어도 한참 있다 주는" 꼼꼼한 성격이라고 강조했다.
임필순 씨는 김성태가 자신에게는 간혹 천만 원씩 도움을 주기도 했지만, 이는 수십 년간 이어온 각별한 관계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톡톡 돈을 쓰는 스타일이 아닌데 나를 봐서는 천만 원을 주기도 했다"며 "그만큼 가깝다는 증표"라고 말했다. "그런데 뭐가 미쳤다고 이재명이가 무슨 역할을 해주는데 20억을 주겠느냐"며 검찰 주장의 허구성을 지적했다.
김성태를 살리려 "이재명은 복이 없다" 자기합리화
현재 김성태가 허위 진술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 임필순 씨는 나름의 방식으로 합리화했다. "이재명이 전생에 지어놓은 복이 좀 모자라서"라며 김성태를 살리기 위해 이재명이 희생되어야 하는 상황을 운명론적으로 설명했다.
"세월이 많이 흐른 후에라도 진실을 밝혀야 한다"면서도 "지금은 말하면 당장 불이익이 돌아오고 회사가 다 망조가 드는 판"이라고 우려했다. 임필순 씨는 "정권이 바뀌고 나면 김성태가 강요에 의해 거짓 진술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걸 세상에 공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31일 이화영 전 부지사의 결심공판을 앞두고 나온 이번 증언은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의 실체를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검찰 수사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이 증언은 '정치검찰의 표적수사' 의혹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법원이 이번 증언을 어떻게 평가할지 주목된다.
녹취록 뒤집는 임필순의 반론, 오히려 드러난 진실
뉴탐사 보도가 나가기 전 임필순 씨는 강진구 기자를 통해 격한 반응과 함께 반론을 제기했다. "김성태를 2001년 이후 한 번도 보지 못했다"며 관계를 부인했고, 장원테크와 KH건설 인수 관련 정보도 "뉴탐사 보고 알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는 5월 29일 통화 녹취록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녹취록에는 김성태가 "어머니", "스님", "이모"라고 부르며 찾아왔다는 점, 장원테크의 구미·베트남 공장과 580억 원의 KH건설 인수 등 상세한 정보가 담겨있다.
주목할 점은 임필순 씨가 9개 항목의 반론 중 유일하게 "쌍방울 대북사업에 경기도와 이재명이 아무 관계가 없다는 말을 한 것은 맞다"는 점만 인정했다는 사실이다.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까지 부인하면서도 이재명 대표와의 무관성은 재확인한 것이다. 이는 수양아들인 김성태를 보호하기 위해 대부분의 진술을 부인하면서도, 이재명 대표의 무고함만큼은 끝까지 지키려 한 것으로 해석된다. 31일 이화영 전 부지사의 결심공판을 앞두고, 법원이 이 같은 정황을 어떻게 평가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