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보도

한동훈 부친 대표였던 AMK, 노동탄압 선두기업이었나

한동훈 운동권 혐오 이유

2024-02-21 21:00:45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부친 한무남 씨가 한국 대표로 있던 AMK(한국어플라이드마그네틱스)가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 노동자 탄압을 극심하게 했던 기업으로 파악됐다. 한 위원장이 “운동권 특권 세력 청산은 시대정신”이라며, 운동권 출신들을 향해 각을 세웠던 데는 집안 환경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AMK는 AMC라는 미국 다국적기업이 투자한 100% 외국인 투자기업으로, 한국의 임금수준이 낮던 1960년대부터 진출해 있었다. 한동훈의 부친 한무남 씨가 대표였고, 작은아버지 한이남은 공장장을 맡고 있었다. AMK 춘천과 청주, 서울에 공장을 두고 한때는 7천여명의 직원을 고용했을 정도로 고용창출에 이바지한, 선망의 기업이기도 했다.


그러나 1980년대 중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저임금으로 이윤을 창출하며 노동자들의 피 고름을 짜내기 시작했다. 잔업을 해야만 최저임금에 도달할 수 있을 정도였던 것. 1989년 최저임금이 4,800원으로 책정되자 보너스를 줄이는 방식으로 꼼수를 쓰기 시작했다. 이에 문제 인식을 가진 여공들이 사측의 꼼수를 알리는 유인물을 돌리면서 갈등은 심화되는데, 당시 AMK 사측의 대응 방식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치졸하고 끔찍했다.


1989년 2월 21일자 한겨레 신문에는 당시 유인물을 돌리다 색출 돼 어려움을 당한 성주애 씨의 글을 실려 있다.


춘천 호평공단의 미국인 기업 AMK에 근무하는 미혼여성 노동자이다. 한달 동안 힘들게 일해 보아야 임금은 고작 12만원이고 이돈으로 겨우 먹고 자고 입기에 바쁜, 허덕이는 생활을 유지하여 왔다. 그래서 동생들 학비 한푼 보태주지 못해 언니 누나의 입장으로서 항상 미안한 생각을 가지고 지내왔다. 그래서 올해 최저임금이 일당 4천800원으로 정해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뛸 듯이 기뻤다. 그런데 이게 웬말인가. 지난달 27일 회사쪽은 최저임금을 지급하는 대신에 그만큼 상여금과 호봉은 깎겠다는 안을 제시하는 것이 아닌가.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 이러한 회사쪽의 부당성을 회사의 전 노동자들에게 알려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뜻을 같이 하는 친구와 두차례에 걸쳐 유인물 작업을 하였다가 발각되었는데 회사측은 불순행동 또는 외부세력이 개입된 것이 아니냐는 등 계속적인 추궁을 하여 왔다. 그러고는 임금을 더 주면 회사가 망한다는 내용의 슬라이드를 전 종업원들에게 보여주는 등 회유를 일삼고 있었다. 노동자가 없는 AMK가 있을 수 있는가. 노동자의 생활은 어떻게 돼도 상관이 없고 노동법도 아랑곳없이 이윤을 조금도 양보할 수 없다는 미국인 사장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성주애 <강원도 춘천시>


출처 : 1989년 2월 1일 한겨레 / 강원민주재단 춘천 민주노동운동
출처 : 1989년 2월 1일 한겨레 / 강원민주재단 춘천 민주노동운동


이 같은 호소문을 한겨레 신문에 게재했던 성주애씨는 당시 30일간 무급정직을 당했다. 사측이 내세운 사유는 명령불복종, 선전선동, 무단이탈이었다. 이후 지속적인 출근 투쟁을 했던 성주애 씨에게 사측은 60일 무급 정직으로 대응했다.


강원민주재단 춘천 민주노동운동 사례집 2
강원민주재단 춘천 민주노동운동 사례집 2


당시 성주애 씨는 공장장 한이남을 상대로 한 가처분 신청서를 춘천지방법원에 제출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성주애 씨의 피끓는 호소가 담겼다.


저를 현장 친구들에게 ‘불순세력이다’ ‘배후조정이 있는 세뇌교육을 받았다’ ‘사생활이 복잡하다’ ‘빨갱이다’라고 악선전을 해댄 것도 분한데, 이젠는 순진한 동료들을 회유하여 리더를 중심으로 몇몇 동료들이 저를 현장에서 끌어내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머리채가 잡혀지고 질질 끌리면서 밖으로 나온 저는 노동자들끼리의 싸움으로 몰고 가려는 관리자들의 비열함에 치를 떨었습니다. 그래도 계속 출근했습니다. 출근길에 회사측에 매수된 동료들에게 저지를 당해 몸에 멍이 들고 손에 상채기가 나서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아팠지만, 계속해서 출근을 하며 정당성을 주장했습니다. (중략) 30일 무급정직 후 60일 무급정직이라니! 생존권의 권리마저 박탈 당한 저는 이제 어디에 서 있어야 합니까
성주애 / AMK 노동자


강원민주재단 춘천 민주노동운동 사례집 2
강원민주재단 춘천 민주노동운동 사례집 2


강원민주재단이 지난해 11월 15일 펴낸 춘천 AMK 노동운동 사례집에는 성주애 씨와 함께 유인물을 돌렸던 손미애 씨의 호소도 담겼다. 호소문의 일부다.

저 손미애는 너무도 비열하고 악랄한 수법으로 강제 사직을 당했습니다. 월요일 저희들이 또 출근할 것을 예상한 회사측은 원주의 저희집에 찾아가 아무것도 모르고 놀라고 계시던 부모님께 ‘딸 신세 망친다’ ‘불순세력과 연결되어 있다’느니 공갈과 협박으로 놀라게 만들고 월요일 출근한 저를 김용팔 씨 집으로 끌고 가 아버님을 종용하려 강제사직서를 쓰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실을 안 가족들은 이제 회사측에 대해 분개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손미애 / AMK 노동자

민주화운동기녑사업회가 펴낸 충북민주화운동사를 살펴 보면, 1990년 AMK노동조합을 탄압했던 사측의 대응 방식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다. 


AMK 노조조합원들은 1990년 임금인상투쟁에서 교섭내용을 공개할 것을 노조에 요구했다. 김종부 노조위원장은 노조의 임금인상 요구안 여자 초임 7,300원을 무시하고 7,000원의 임급협약안을 4월 25일 타결했다. 조합원 1000명~1500명은 4월 26일~28일에 집회를 개최하여 재협상과 어용노조 퇴진을 요구했다. 사측은 집회를 주도한 박선복 대의원을 폭행하고 여성조합원들을 조직적으로 폭행했다. 이로 인해 이미자가 안경이 깨지면서 눈이 찢어졌고, 홍선영은 전치 4주의 부상을당했고 박미경은 후유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중략) 사측은 AMK 민주노조추진위원회를 와해시키기 위해 조합원간 갈등을 부추겼다. (중략) 사측은 5월 23일 위원장직무대행 박필순과 박선복, 김계애 대의원과 박미순을 업무방해로 해고했다. 5월 28일 사측은 관리자 30명을 동원해 출근투쟁을 하는 해고 노동자를 납치해 청주 명암약수터에 내려놓았다. 이 과정에서 옷이 찢기고 신발을 잃어버린 해고 노동자들은 맨발로 청주시내까지 걸어왔다. (중략) 경찰은 6월 1일 해고자 박미순과 박필순을 연행해 구속하고 연행에 항의하는 허옥자를 경찰서 안에서 구타했다. (중략) 힘겹게 건설한 ANK민주노조의 길은 평탄치 않았다. 1991년 1월 4일 차승철 노조부위원장이 회사측의 사주를 받은 것으로 보이는 정홍규 유근성 등 4명으로부터 노조탈퇴 강요를 당하며 집단폭행을 당했다. 이들은 차승철 부위원장을 소주병으로 내리치는 등 30분간 무차별적인 구타를 가했다. 4월 10일 노조 사무실과 회사 정문에서 사측의 폭행이 가해졌다. 경비실 근무 한경만이 노조 사무실로 와 사무국장의 얼굴을 구타하여 코피가 나게 하고 책장 유리창을 부수어, 유리조각을 들고 ”너희들 죽이고 형무소 가겠다“ ”할복자살하겠다“는 등의 위협을 하며 노조위원장, 사무국장, 총무부장을 공포에 떨게했다. 잠시 후 AMK 임투결의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회사 정문에 도착한 박미순은 관리자 정홍규에게 폭행을 당했다. 정홍규는 소주병을 깨 박미순의 목에 들이대며 ”죽이겠다“고 위협하면서, 박미순을 번쩍 들어 시멘트 바닥에 수차례 내동댕이 쳤다. 박미순은 뇌진탕으로 한국병원에 입원했다. 사측은 1991년에 있을 노조위원장 선거에서 어용노조를 세우기 위해 노조간부들에 대해 원시적인 폭행을 가했던 것이다. (후략)
충북민주화운동사 발췌


당시 노동자들은 사측의 경영을 힘들게 만들었다는 오해까지 감당해야 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강원민주재단은 사례집에서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춘천 AMK노조는 1994년 춘천 AMK를 폐업에 이르게 했다는 오해를 사기고 했다. 하지만, AMK에 컴퓨터 부품을 납품 받던 IBM사는 마이크로 소프트에 주도권을 빼앗기고 1992년에 이미 60억 달러의 손실을 보고 있었다. 따라서 AMK노조는 국내 노동자들에게 책임감이 없는 외국인 기업으로부터 직장을 잃을 위기에 놓인 노동자들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투쟁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강원민주재단 사례집


강원민주재단 하상윤 상임이사는 “AMK는 컴퓨터에 들어가는 작은 부품을 만드는 회사로 별다른 기술력이 필요하진 않았다”며, “1980년대 말 한국의 기술력이 좋아지고 인건비도 높아지면서 미국 입장에서는 굳이 한국에서 공장을 운영할 필요가 없어지고 있던 때”라고 설명했다. AMK 한국 공장의 수명이 다해가고 있었다는 얘기다.


하 이사는 "당시 공장장이 와서 밥 먹자, 술 먹자라고 하며, 금전적 유혹을 해오고 '몇 명을 취업시켜 주겠다'는 등 감언이설로 꼬득이며 노동자들을 설득해 달라고 했는데, 당연히 돌아섰다"고 회상했다. 


더 이상 효용 가치가 사라진 한국 공장이 철수한 것은 미국 기업이 부도난 2000년이다. 이때까지 AMK는 각종 국가 지원과 혜택을 보며 꿀을 빨았고, 1994년 9월 14일자 중앙일보에 따르면, 1993년 국내 제조원가를 조작하는 수법으로 법인소득을 빼돌리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또 AMK는 춘천 AMK노조가 설립 후, 사원 900명을 감축하고 이듬해 다시 300명의 신입사원을 모집하는 방식의 노동탄압도 일삼았다. 일감이 늘지 않았는데, 신입사원을 뽑아 놓고 무급휴가를 보내는 방식으로 취업률만 높여 정부 지원을 받았는데, 당시 중소기업 지원 세금반환 정책을 이용해 환수받은 금액만 총 56억원이었다고 한다.


AMK가 하청업체인 코리안마이트에 했던 폭력도 매우 악랄했다. 


AMK 하청업체(코리안마트) 요청도 묵살하고 폭행
AMK 하청업체(코리안마트) 요청도 묵살하고 폭행


코리안마이트는 노동자들이 1990년 노조를 결성하자 이를 대응하기 위해 위장폐업까지 단행했던 업체로, 전영행 사장은 충북도내에서 최초로 노동조합법과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구속까지 됐을 정도다. 노조임원의 작업복을 면도칼로 찢고 "죽여버리겠다"고 협박까지 했다고 충북민주화운동사에는 기록돼 있다. 


그러나 원청 회사인 AMK는 하청회사의 일로 치부하면서도 노조말살에 동조하는 듯한 행동을 보였다. 노조탄압을 자행하는 사측이 위장폐업을 하자, 노동자들은 원청회사인 AMK를 찾아 생계대책을 요구했다. 이에 AMK는 노조원 35명 방문 전, 정문에 전류장치를 설치해 두었고, 이때문에 노동자들은 감전되어 몸이 튕겨져 나가는 부당을 입었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한동훈 장관이 부친으로부터 상속받은 재산 역시 노동자들의 피고름을 짜내 얻은 부의 산물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한동훈 장관이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에는 부천 건물, 춘천과 용인 소재 토지 등이 있다. 이중 현재까지도 보유중인 부천 소재 건물은 각종 호재 속에 현재 시세가 40억원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인근에 초등하교가 위치했고,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예정인데다 2017년 인근 실내경마장이 폐업하고 지난해 보도로 3분 내외 거리에 원종역이 개통됐다. 호재는 더 있다. 계양신도시와 연계개발중인 대장신도시 개발이 추진중이다.


이 개발사업의 한 축으로 대장신도시에서 홍대입구역을 잇는 대장홍대선도 내년에 착공될 예정이다.


인근 부동산 중개인은 “대장홍대선도 내년에 착공에 들어간다”며 “원래는 원종역 아래로 역이 나올 예정이었는데, 위쪽으로 나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위치상 한동훈 위원장 소유 건물과 더 가까워지는 셈이다.


이에 ▲부친께서 대표셨던 AMK의 노동탄압이 무척 심했던 것으로 파악되는데 인정하는지, ▲AMK는 미국 회사 부도이후 한국에서 철수 했고. 당시 회사가 어려워진 이유를 노동자들에게 돌리는 분위기도 있었는데 어떤 생각인지, ▲통상적으로 사업을 하다 부도가 나면, 주변 피해를 줄이기 위해 빚 청산하기 바쁜데 어떻게 부친께선 상속할 재산을 마련했는지, ▲당시 부친으로부터 상속받은 재산은 얼마나 되는지, ▲공개된 것 외에 더 있는지, ▲백부 한창수씨로부터 증여받은 재산은 혹, 한무남 씨의 차명은 아닌지, ▲현재 윤석열 정권 들어 민주화가 퇴보하고 노동자의 권리도 추락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한동훈 비대위원장에게 카카오톡으로 질의했으나, 답은 오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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