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사

이승만과 통역정치! 미군정 시절 하지 중장을 농락해 반민특위 해체한 통역관 이묘묵과 박마리아는 누굴 위해 세치혀를 놀렸나

2024-06-09 19:00:00

이승만의 통역관 이묘묵과 박마리아의 행적


이승만 정권 시절 미군정 사령관인 하지 중장과 프란체스카 여사의 통역을 맡았던 이묘묵과 박마리아. 이들은 당시 한국의 정치 지형을 좌우하는 엄청난 권력을 쥐고 있었다. 특히 이묘묵은 대한민국의 정치 세력을 좌익과 우익으로 분류해 하지 중장에게 보고했고, 이 보고서가 작성된 곳은 다름 아닌 룸살롱이었다.


주요 정치 세력을 좌익과 우익으로 분류한 이묘묵은 김규식, 여운형 등을 좌익으로 분류했다. 하지만 이들은 절대 공산주의 이념에 경도된 이들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묘묵은 이들을 좌익으로 분류함으로써 남조선 단독 정부 수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식민지배의 청산을 가로막은 미군정


이묘묵이 연희전문을 나와 연세대 교수가 된 과정에서 친일 행적이 있었다. 그는 조선민족혁명당의 발기인으로 활동하며 친일파로 변절했고, 이는 해방 후에도 이어졌다. 그는 적산 분배 과정에서도 친일파들에게 특혜를 주며 이권을 챙겼다.


반면 일제 강점기 경찰과 관료의 상당수는 일본인이었다. 하지만 이들 중 절반도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에 남았다. 이들은 족보를 바꾸고 씨를 바꾸는 등의 방법으로 한국에 잔류했고, 이 과정에서 미군정은 오히려 이들에게 재산을 분배해주었다.


여운형 암살과 이승만 정권의 탄생


이묘묵과 박마리아는 반민특위 해산을 주도하며 친일파를 보호했다. 특히 이들은 국일관의 고급 접대부 역할을 하며 요직에 있는 인사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이런 인맥을 바탕으로 이들은 반민특위를 무력화시켰고, 나아가 여운형 암살을 주도했다.


결국 이승만은 좌우합작 노선을 걷어내고 정권을 장악할 수 있었다. 여운형이라는 거대한 장애물이 사라지자 이승만은 미군정의 일방적인 지지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의 배후에는 이묘묵과 박마리아가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이승만 정권이 들어섰지만, 이는 결코 바람직한 과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승만 정권의 탄생은 친일파의 재등장이었고, 식민 잔재의 청산을 가로막은 사건이었다. 지금도 이승만 기념관 건립이 추진되는 상황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이승만 정권의 출범 과정을 돌아봐야 한다. 과연 이승만은 기념관을 세울 만한 인물인가. 오늘날의 관점에서 냉철하게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최신뉴스

주요 태그

시민언론 뉴탐사 회원이 되어주세요.
여러분의 회비는 권력감시와 사법정의, 그리고 사회적 약자 보호 등을 위한 취재 및 제작에 사용되며, 뉴탐사가 우리사회 기득권을 견제할 수 있는 언론으로 성장할 수 있는 힘이 됩니다.
뉴탐사 회원가입
Image Descrip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