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X파일

한빛원전 1,2호기의 무리한 수명연장 시도, 주민들의 끈질긴 저항에 직면하다

2024-07-17 20:43:00

전남 영광군 홍농읍의 한빛원자로 1,2호기가 설계수명 40년을 앞두고 중대한 갈림길에 섰다. 1986년 가동을 시작한 이 원전은 2026년이면 설계수명이 다하게 된다.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은 수명연장을 위한 절차를 밟고 있지만, 인근 지역 주민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며 난항을 겪고 있다.


한수원은 현재 30킬로미터 내 인접지역인 영광군, 함평군, 고창군, 부안군, 무안군, 장성군 등 6개 지역주민을 상대로 공청회를 연이어 개최하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주민들의 안전에 대한 우려와 한수원의 절차 강행 사이의 갈등이 첨예하게 드러나고 있다.


부실한 평가보고서, 주민 안전 위협


한수원이 제출한 방사선환경영향평가보고서 초안에 대해 주민들과 전문가들은 심각한 결함이 있다고 지적한다. 가장 큰 문제는 중대사고 발생 시 대책이 전무하다는 점이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사고 이후 핵발전소의 안전신화가 깨졌음에도 불구하고, 보고서에는 이에 대한 안전대책이 빠져있다.

또 다른 중요한 문제는 '다수호기 문제'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빛원전은 현재 총 6기의 원자로를 운용하고 있다. 하나의 원자로에 사고가 발생하면 다른 원자로까지 연쇄적으로 사고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아지는데, 이에 대한 대책이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주민 이해도외한 공청회 강행


평가보고서의 또 다른 문제점은 주민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전문용어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NUREG-1555', 'MAAP5' 등 전문가가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용어들이 설명 없이 사용되고 있다. 심지어 한수원 관계자조차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할 정도다. 이는 주민 의견 수렴이라는 공청회의 본래 취지를 무색케 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최신기술기준'이 적용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핵발전 기술은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특히 수명연장을 시도하는 원자로의 경우 이 최신 기술의 적용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한빛원전 1,2호기에는 이러한 최신 기술이 적용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공청회 무산과 한수원의 강행


이러한 문제점들로 인해 주민들의 반발은 거세졌다. 지난 7월 12일 영광군에서 열린 공청회는 주민들의 강력한 반대로 무산되었다. 이어 7월 15일 고창군에서 열린 공청회 역시 한수원 측의 편향된 좌장 선정, 위압적인 경호인력 배치 등으로 인해 주민들과 설전이 오갔다.


결국 고창 공청회도 무산 선언으로 마무리되었지만, 주민들이 빠져나간 후 한수원 측 인사들만 남아 공청회를 재개하는 무리수를 둬 시민들의 지탄을 받았다. 7월 17일 예정되어 있던 부안군의 공청회는 이런 사태를 우려한 부안군이 하루 전 긴급히 취소하기도 했다.


법적 허점과 주민들의 대응


한수원의 이러한 행태에 대해 주민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주민들의 요구는 명확하다. 부실하고 위법하게 작성된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 초안을 재작성하고 절차를 다시 진행하라는 것이다. 주민들은 자신들의 건강과 재산상 피해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 권리가 있으며, 이에 따라 수명연장 절차는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수원은 다른 의도를 보이고 있다. 원자력안전법 시행령 제145조 5항에 따르면, 사업자의 책임이 아닌 사유로 공청회가 2회에 걸쳐 개최되지 못하거나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못한 경우 공청회를 생략할 수 있다. 한수원이 이 조항을 이용해 공청회를 무산시키고 절차를 '패스'하려 한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응해 일부 지역에서는 대규모 상경투쟁을 통한 원자력안전법 시행령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형식적인 공청회 절차를 폐지하고 신규 건설 및 수명연장을 위한 운영허가변경 등에 '주민동의'를 법제화하자는 것이다.


국민 안전이 최우선


핵발전소의 사고, 특히 대한민국처럼 좁은 국토에서의 사고는 인접주민들의 즉각적이고 궤멸적인 피해를 넘어 전국토의 오염과 전국민의 건강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40여 년 전의 설계로 만들어지고 최신의 업데이트마저도 등한시한 원전이 안전할 거라고 믿는 것은 수십 년을 운행한 고속버스에 몸을 맡기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미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의 사례에서 보듯이, 핵발전소 사고는 인류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우리는 괜찮을 거야'라는 근거 없는 안전에 대한 확신은 이들 지역에도 있었다. 우리도 예외일 수 없다.


국가의 제1목표는 국민의 안전과 건강이다. 한수원은 눈앞의 이익에 미래를 도박에 거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주민들의 우려와 안전에 대한 요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할 것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그 어떤 경제적 이익보다도 우선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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