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보도

최상목의 계엄 공모 정황 포착...보도자료 생성일이 11월 13일

윤석열 앞에서 F4회의 소집..."무제한 유동성 공급"으로 계엄 체제 안정화 도모

2025-01-06 00:52:28

한남동 뒤덮은 "윤석열 체포" 함성...최상목은 경찰력 증강 요청


1월 5일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 영하의 날씨에도 시민들은 윤석열 체포를 촉구하며 밤을 지새웠다. "윤석열을 구속하라"는 구호가 한남동 밤하늘을 울렸다.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방한용 은박 비상담요를 덮어쓴 시민들이 대통령 관저를 에워싼 가운데,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전혀 다른 행보를 보였다. 윤석열 방어를 위해 한남동 관저에 200명의 경찰 병력 추가 배치를 검토한 것이다. 공수처의 체포영장 집행을 막기 위해 경찰력을 동원하려 했다는 점에서, 계엄을 반대했다는 최상목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고 있다.


국정농단 수사때 윤석열과 맺어진 특별한 인연


최상목은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으로 미르재단 설립의 핵심 인물이었다. 재단 설립 과정에서 9개 재벌로부터 300억원의 자금을 모금하는 실무를 총괄했다. 당시 특검 수사기록에는 최상목이 기업들을 상대로 자금 출연을 압박했다는 증언이 다수 포함됐다. 그러나 윤석열이 이끄는 수사팀에서는 참고인 신분으로만 조사받고 기소되지 않았다. 최순실 국정농단의 핵심 관계자들이 대거 구속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대통령 앞에서 F4 회의 소집"...자가당착에 빠진 최상목의 발언들


12월 3일 비상계엄 당일, 최상목은 국무회의에서 계엄을 반대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회 답변에서는 "대통령이 계신 자리에서 F4 회의 소집을 지시했다"고 실토했다. 계엄 반대와 배치되는 발언이다. 더욱 수상한 것은 대통령 집무실에서의 행적이다. "누군가가 따라 들어왔다"면서도 그 인물이 누구인지 밝히길 거부했다. 조태열 전 외교부 장관은 "정진석 비서실장이 최상목과 함께 윤석열의 집무실로 들어갔다"고 증언했다.


무제한 유동성 공급으로 계엄 체제 안정화 도모


F4 회의는 정부의 최고위급 경제·금융 수장들이 모이는 회의체다. 기획재정부 장관(경제부총리), 한국은행 총재, 금융위원회 위원장, 금융감독원장이 참석한다. 그동안 정기적으로 개최되어 온 이 회의가 12월 3일 갑자기 '긴급' 거시경제 금융현안 간담회로 명칭이 바뀌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최근에도 8월 6일, 9월 19일, 11월 8일, 14일 열렸지만 '긴급'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것은 계엄 당일이 처음이다.


계엄 발표 직후 개최된 이 회의에서는 '무제한 유동성 공급'이라는 이례적 조치가 결정됐다. 한국은행이 시중은행에 필요한 만큼의 자금을 제한 없이 공급하겠다는 이 조치는 금융시장이 패닉에 빠지는 것을 막고 계엄 체제를 안정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F4 회의 보도자료에는 "비상계엄 선포 이후 나타날 수 있는 시장 불안 요인에 대응하기 위해 무제한 유동성을 공급한다"고 명시됐다. 계엄 이후 4일, 5일, 6일, 9일 연이어 '긴급' F4 회의가 열린 것도 이례적이다. 최상목이 계엄을 반대했다면, 이처럼 계엄 체제를 뒷받침하는 연속적인 조치를 주도할 이유가 없다.

12.3 비상계엄 당일 최상목의 수상한 행적

21:40
대통령실, 최상목에게 국무회의 소집 통보
21:55
최상목, 대통령실 국무회의장 도착
15분 만에 도착 - 사전 대기 의혹
22:40
윤석열이 최상목에게 쪽지 전달
정진석 비서실장 동석
22:45
윤석열 앞에서 F4회의 소집
"계엄 반대" 주장과 배치되는 행동
23:19
F4 회의 소집 언론보도 시작
23:40
기재부 F4 회의 결과 보도자료 배포
파일 생성일: 11월 13일

계엄 20일 전부터 준비된 의혹...의문의 보도자료

▲계엄 당일 기재부 홈페이지에 게시된 보도자료를 다운로드 받은 뒤, 한글 파일의 문서정보를 보면, 작성일이 2024년 11월 13일로 돼 있다.
▲계엄 당일 기재부 홈페이지에 게시된 보도자료를 다운로드 받은 뒤, 한글 파일의 문서정보를 보면, 작성일이 2024년 11월 13일로 돼 있다.

뉴탐사가 입수한 기재부의 F4 회의 보도자료에는 놀라운 사실이 담겨있다. 파일 생성 시점이 11월 13일 오전 11시. 계엄 선포 20일 전이다. 작성자는 기재부 자금시장과 최봉석 사무관이다. 통상 F4 회의 보도자료는 회의 하루 전에 작성되는 것이 관례다. 12월 30일 열린 F4 회의의 보도자료도 12월 29일에 작성됐다. 그런데 왜 계엄 당일 배포된 보도자료는 20일이나 앞서 만들어졌을까. 기재부는 "당일 작성했다"고 해명했지만, 파일 정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한 시간 만에 금융수장 소집...사전 준비 없이 가능했나


최상목의 F4 회의 소집 과정은 석연치 않다. 윤석열의 계엄 담화 발표 후 10시 40분, 최상목은 대통령으로부터 쪽지를 받았다. 그리고 바로 F4 회의를 소집했다. 한국은행 총재, 금융감독원장, 금융위원장 등 금융당국 수장들이 불과 1시간 만에 모두 모였다. 같은 날 경찰청은 자정이 되어서야 긴급회의를 열었고, 계엄 해제 결의안이 통과된 오전 1시 40분에야 회의를 마쳤다는 점과 대조적이다.


경찰청장이 계엄령 선포 이후 경찰의 대응 방안을 뒤늦게 검토했다고 알려진 것과 달리, 최상목은 계엄 직후 즉각적으로 금융시장 안정화 대책을 내놓았다. 이처럼 신속한 대응은 사전 준비 없이는 불가능한 일정이다. 회의 결과도 계엄 체제를 뒷받침하기 위한 '무제한 유동성 공급'이라는 구체적 조치였다는 점에서, 최상목이 계엄의 핵심 가담자였다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


기회주의자의 민낯 드러난 최상목


최상목은 계엄을 반대했다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실제로 계엄 선포 전에는 반대 의사를 표명했을 수 있다. 그러나 계엄이 선포된 직후 그의 행적은 철저히 계엄 체제의 안정화를 위한 것이었다. 윤석열 앞에서 F4 회의를 소집했고, 무제한 유동성 공급이라는 이례적 조치로 계엄 체제를 뒷받침했다.


계엄 해제가 확실시된 이후에야 다시 '반대파'로 돌아선 최상목의 행보는 전형적인 기회주의자의 모습이다. 국회 해산이 불발되고 계엄이 실패로 돌아가자 비로소 사의를 표명한 것이다. 20일 전 작성된 보도자료는 그가 계엄을 예견했거나, 최소한 계엄 준비 과정에 가담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제 공수처는 최상목이 윤석열의 내란 시도에서 맡은 역할을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 계엄 직전에는 반대, 계엄 중에는 협력, 계엄 실패 후에는 다시 반대. 이런 기회주의적 행태가 과연 내란 가담의 면죄부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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