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사

김창룡의 실체: 55만명 '좌익 인사' 색출, 1300명 처형한 '이승만의 아들'

일제 협력에서 한국전쟁 후 무자비한 숙청까지... '한국사 최악의 인물'

2024-09-08 20:00:00

김창룡,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그림자


배기성 역사 강사는 김창룡을 "한반도 역사 5000년에 가장 나쁜 놈"이라고 평가한다. 이 강렬한 비판의 근거를 따라가며 김창룡의 생애와 그가 한국 현대사에 남긴 상흔을 자세히 살펴보자.


일제 협력자에서 반공의 선봉으로


1920년 7월, 함경남도 요덕군에서 태어난 김창룡은 일제 강점기 말기 만주에서 활동했다. 배기성 강사에 따르면, 김창룡은 1943년부터 1945년까지 항일 조직 50여 개를 적발했다고 한다. 특히 1943년, 중국 공산당 팔로군의 최강 조직인 왕근례(왕진리)를 체포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그의 일제 협력 행적을 명확히 보여주는 증거다.


해방 후 김창룡은 남한으로 넘어와 빠르게 세력을 확장했다. 1946년부터 1956년까지 그는 사병에서 중장으로 급상승했다. 특히 1948년 여수·순천 반란 사건 이후 좌익 세력 색출에 앞장섰다. 1949년에는 박정희 소령을 체포하고 군 내 1500여 명의 '좌익 인사'를 숙청했다고 알려져 있다.

무자비한 숙청의 주역으로


한국전쟁 당시 김창룡의 권력은 절정에 달했다. 1950년 9월 서울 수복 직후 이승만은 그를 합동수사본부장에 임명했다. 이 자리에서 김창룡은 좌익 혐의자 색출과 처형을 주도했다.


배기성 강사는 "정작 좌익활동을 했던 사람들은 전부 다 9월 15일에 인천 상륙작전이 성공하면서 다 북한으로 갔다"며 "우리는 누구를 죽인 겁니까?"라고 반문한다. 실제로 당시 55만 915명이 좌익 혐의를 받았고, 서울에서만 1298명이 처형됐다고 한다. 이는 무고한 시민들이 대거 희생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승만의 '아들'로 군림하다


1951년 5월 김창룡은 육군특무부대 대장이 된다. 이승만은 국무회의에서 "김창룡 대령을 자식처럼 사랑해 주세요. 내 아들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의 권력은 막강해져 정일권, 백선엽과 같은 고위 장성들조차 그를 두려워했다고 전해진다.


배기성 강사는 "김창룡이 취급한 사건들도 전부가 협박, 공갈로 자백을 받은 것으로 대부분 허위날조 됐거나 침소봉대된 것이었다"고 말한다. 또한 "살인, 약탈, 협박 등으로 군수품을 다 빼돌리고 밀수를 하는 식으로" 막대한 재산을 모았다고 주장한다. 36살의 나이에 2400억 원에 달하는 재산을 모았다는 증언도 있다.


권력 남용과 군 기강 문란


김창룡은 정보를 군사목적이 아닌 자신의 세력 확장에 이용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는 직속 상관인 참모총장이나 국방부 장관을 무시하고 직접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등의 월권 행위를 일삼았다. 또한 지휘관 사이를 이간질하여 장성들을 분열시켰고, 특무대는 본래의 사명을 망각하고 군 지휘관들을 감시하는 데 열중했다고 한다.


이러한 행태는 군 기강을 문란하게 만들고 정상적인 지휘체계를 왜곡시켰다. 이는 결과적으로 대한민국 군대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었다.


역사의 심판을 받다


1956년 1월 30일, 36세의 나이로 김창룡은 암살당한다. 강문봉의 지시를 받은 허태영, 이유회, 신초식, 송용고 4명이 그를 살해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이승만은 그의 영전에 세 번이나 조문하며 애통해 했고, 그를 추모하기 위해 6월 6일을 현충일로 지정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김창룡의 묘비문은 식민주의 역사학자이자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교수였던 이병도가 썼다고 한다.


배기성 강사는 "이승만을 따라서 김창룡과 함께 대한민국 현충원에서 파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김창룡의 행적이 우리 현대사의 큰 오점이며, 이를 바로잡는 것이 역사 정의를 세우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역사적 평가와 현재적 의미


김창룡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권력의 위험성과 역사 바로세우기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운다. 그의 행적은 독재 정권 하에서 권력이 어떻게 남용될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비극적 결과를 낳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예시다.


동시에 김창룡의 사례는 우리에게 역사적 진실을 밝히는 일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과거의 잘못된 행적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바로잡는 것은, 미래의 유사한 과오를 방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다.


김창룡의 생애를 되짚어보는 것은 단순히 과거를 비난하기 위함이 아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권력의 견제와 균형, 인권의 존중, 법치주의의 확립 등 민주사회의 근간이 되는 가치들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결론적으로, 김창룡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역사의 교훈을 상기시키며,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우리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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