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전 장관이 '청담동 술자리' 보도의 허위성을 입증하지 못한 채 결국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22일 열린 10억 원 손해배상 청구 소송 3차 공판에서 한동훈 측은 술자리 당일인 지난해 7월 19일 자신의 행적을 밝히지 않은 채 법원이 요구한 입증을 또다시 회피했다.
증거 제출 못한 한동훈..."10억 포기 왜?"
재판부는 오늘(22일) 공판에 앞서 법무부와 검찰에 한동훈 전 장관의 당일 행적과 관련한 자료 제출을 요청했으나 모두 의미있는 자료를 내놓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동훈 측에서도 반박하지 못했다. 박대용 기자는 "한동훈 전 장관이 술자리 당일인 7월 19일 자신의 행적을 공개하면 10억 원을 벌 수 있는 판인데도 그 기회를 포기한 이유가 궁금하다"며 "증거를 내놓지 않고 거짓말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누가 믿겠냐"고 반문했다.
법원 "입증 책임은 원고에게"...한동훈 측 황당 주장도
재판부는 공판에서 허위성 입증 책임은 원고인 한동훈 측에 있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지난 2차 공판때 법무부와 검찰의 자료 제출 후에 입증 책임이 어느쪽에 있는지 판단하겠다고 했으나 법무부와 검찰이 자료 제출을 사실상 거부함에 따라 원고가 입증해야할 상황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러나 원고 측 변호인은 허위사실임이 이미 입증됐다면서 "원고(한동훈)를 비롯해 대통령, 첼리스트, 이세창 대표 모두 (술자리에) 참석한 사실이 없다"는 황당한 주장을 펼쳤다. 윤석열, 한동훈은 몰라도 첼리스트와 이세창까지 술자리에 없었다고 주장하는건 원고측이 제출한 증거인 경찰 송치결정서와도 배치되기 때문이다.
한동훈 측, 결심 앞두고 재판 두달뒤로 연기 요구
재판부는 당초 오늘(22일) 결심을 하려 했으나, 한동훈 측 변호인이 "방송 내용 중 허위 사실로 특정할 부분이 더 있으니 시일을 달라"며 두 달 후로 기일을 미뤄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대해 강 기자는 발언기회를 요청해 "원고가 소송을 제기한 지 1년 반이나 지났는데도 허위성을 특정하지 못하고 있다"며 "재판을 고의로 지연시키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표했다. 소위 '침대축구'를 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인 셈이다. 강 기자는 "원고가 스스로 허위성을 입증하지 못하면서 방송 내용을 특정하겠다며 재판 연기를 요청하는 것은 사법 절차를 악용해 언론을 압박하려는 의도로 해석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피고 측 변호인인 정철승 변호사도 법정에서 의견을 개진했다. 정 변호사는 "원고가 피고를 고소한 사건이 현재 검찰 수사 단계에 있는데, 그 사이에 기소 결정이 내려질지도 모른다"면서 "만약 기소가 되면 원고 측에서 1심 판결을 기다려 달라고 요청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이어 "형사상 책임과 민사상 책임은 별개로 판단할 수 있는 만큼, 설령 검찰에서 기소를 하더라도 이번 민사소송은 예정대로 7월 17일에 결심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원고측이 재판을 또 다시 연기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재판부는 양측 추가 제출할 증거가 없는지 재차 확인한 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7월 17일 결심을 하겠다고 밝혔다.
김의겸 "사실 적시 아닌 의견 표명"...면책특권 주장
김의겸 의원 측은 이날 재판에 제출한 준비서면을 통해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먼저 김 의원이 국회에서 한 발언은 질문에 불과할 뿐 사실을 적시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어 "한동훈 전 장관이 당일 동선을 밝히지 못하는 모습은 그가 법무부 장관 시절 검찰 특수활동비를 공개하지 못했던 모습과 일치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2007년 한 국회의원이 당시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대통령 측근의 대선자금 제공 의혹"을 제기한 발언이 면책특권에 해당된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음을 상기시켰다. 아울러 김 의원이 국회 밖에서 한 발언의 경우에도 "첼리스트와 이세창 총재의 통화 내용이 대통령의 술자리 참석을 인정하고 있고, 그 내용이 매우 생생하고 구체적이어서 거짓이라 보기 어렵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김 의원이 YTN 라디오에 출연해 '청담동 술자리' 의혹이 가짜뉴스에 동의하느냐는 질문에 "동의할 수 없다"고 답한 것 역시 사실을 적시한 게 아니라 의견을 표명한 것에 불과하다고 봤다. 설령 사실 적시로 본다 하더라도 그의 발언은 "진실한 사실이고 공익을 위한 것"이라는 게 김 의원 측의 시각이다. 준비서면은 또 "뇌물범죄나 성범죄처럼 밀행성이 강한 범죄, 청와대 경호 시스템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 등에 대해서는 관련자들의 진술이 얼마나 생생하고 구체적이며 실제 경험하지 않고서는 말하기 어려운 내용인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법무부 장관은 국가기관인 만큼 어떤 표현이 악의적이거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지 않은 이상 이를 참고 견뎌내야 한다"는 점, "이세창 총재가 보도 직전 인터뷰에서 대통령의 노래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기에 이를 근거로 법무부 장관에게 확인을 구할 만했다"는 점 등을 근거로 제시했다. 끝으로 김 의원 측은 "당시 발언 내용이 진실이라고 믿은 것이 악의적이거나 상당성을 크게 잃은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원고(한동훈)는 이를 수인하고 참고 견뎌야지 김 의원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출국금지 된 '첼리스트'...경찰 조사 받았나
한편 청담동 술자리 목격자로 알려진 '첼리스트' 박모씨에 대해 경찰이 최근 출국금지 조치를 내린 사실이 뒤늦게 보도됐다. 그는 앞서 변호사를 통해 "외국에 있어 재판 증인 출석이 어렵다"고 주장했으나, 정작 본인은 국내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확인돼 모순이 있는 상황이다.
첼리스트의 변호사인 이제일 씨는 지난 3월 15일 자신의 유튜브 방송에서 "한동훈 전 장관 측 기자들과 소통한 결과, 한동훈 장관은 이 재판에 아예 관심이 없다고 한다"는 취지로 발언해 논란이 일었다. 이 변호사의 이 같은 발언이 나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첼리스트 씨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가 내려진 것이다.
특히 첼리스트 박모씨가 지난 3월초 옷가게 지인에게 "윤석열, 한동훈이 술자리에 왔다. 이는 탄핵감"이라고 말한 녹취가 공개된 이후 경찰이 태도를 바꿨다. 녹취 내용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윤석열 정부로서는 큰 부담이 될 수 있는 만큼, 이를 차단하기 위해 첼리스트 씨의 행적을 통제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된다.
첼리스트 "김용민PD, 첼리스트에 스토리·대본까지"...증언 조작 의혹
첼리스트는 지난해 4월 제보자 A씨와의 통화에서 "김용민 PD가 머리를 다 써서 모든 걸 원하는 대로 스토리를 다 만들어 놓고 대본까지 다 만들어 놓겠다"고 말했다고 털어놨다. 해당 발언은 지난해 3월 말, 김 PD가 첼리스트 씨 관련 방송을 내보내기 직전에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이거 해가지고 해서 (김용민이) 머리 다 써주는거야. (중략) 제(김용민)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건데 진짜 채아씨가 방송해 주시고 만약에 변호사까지 같이 해주시고 한다면 모든 걸 원하는대로 다 스토리 다 만들어 놓고 대본까지 다 만들어 놓겠다고첼리스트 박모씨 통화 녹취(2023.4.5)
"머리를 다 써준다"는 표현은 김 PD가 첼리스트에게 사전에 입맛에 맞는 대본과 증언 내용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모종의 '작전'까지 함께 짜주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김 PD가 첼리스트 씨에게 자신이 원하는 방향의 '각본'을 사전에 제공하겠다는 뜻이다. 심지어 질문뿐 아니라 그에 대한 답변까지 써주겠다고 제안했다면, 사실상 '증언 조작'을 의미한다. 이는 과거 장시호 씨에게 증언 내용을 사전에 연습시켰다는 의혹을 받은 검사들의 행태와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이다.
만약 김 PD의 발언대로 첼리스트 씨의 증언이 조작된 것이라면, 이는 중대한 언론윤리 위반이자 사법방해에 해당할 수 있다. 김 PD가 '청담동 술자리'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려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의도한 방향대로 여론을 몰고 가기 위해 증언을 유도·조작하려 했다는 의구심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김 PD는 해명과 소명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언론인으로서 진실 보도가 아닌 증언 조작이 의심되는 상황인 만큼, 이에 대한 납득할만한 해명이 필요해 보인다.
한편, 김용민 PD에 이어 열린공감TV 제보자였던 그레이스김도 청담동 술자리 제보자 이 모 씨에 대해 "수억 원을 노리고 더탐사에 접근한 사기꾼"이라는 취지로 비방했다. 청담동 술자리 제보자 이씨는 명예훼손 혐의로 그레이스김에 대해 고소장을 제출했으며, 현재 천안동남경찰서에서 수사중이다.
검찰 출석 앞둔 강진구 기자 "공정한 수사 아니면 거부"
뉴탐사 관계자들은 23~27일 사이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을 예정이다. 이들은 "만약 윤석열·한동훈의 동선부터 확인하지 않고 기자 조사에 나선다면 이는 공정한 수사가 아니다"라며 "요식행위에 그친다면 조사를 중단하고 거부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강진구 기자는 마지막으로 "한동훈조차 입증을 포기한 마당에 일부 세력이 계속 가짜뉴스라 주장하는 건 한동훈을 대신해 대변하는 꼴"이라며 "이는 민주 진보 진영 내 분열을 조장하고 언론 신뢰를 떨어뜨려 결국 윤석열 정권에 도움 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청담동 술자리 의혹은 대통령 탄핵과 직결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인 만큼 진실 규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