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서울중앙지법 판사, 판결문에 '나무위키'를 유죄 근거로 기재

판결문 증거의 요지 7개 항목 가운데 다섯 번째로 올라

수사 검사는 1년 10개월 전 "무척 위험하다"고 지적

나무위키에 없던 수원고법 판결, 1심 판결문에도 없어

정천수 "자료 없다" 진술 근거로 노무현 독대 허위 판단

2026-09-22 15:25:38

서울중앙지방법원 판사가 지난 9일 정천수씨에 대한 명예훼손을 유죄로 인정했다. 그러면서 유죄의 근거 가운데 하나로 나무위키를 들었다. 판결문  증거의 요지에 '나무위키 검색결과(열린공감TV)'라고 적혀 있다. 누구나 고쳐 쓸 수 있는 인터넷 사전이다.


이 사건을 수사한 검사는 나무위키를 두고 경고한 적이 있다. 나무위키로 사실관계를 확정하는 것은 "무척 위험하며"라고 적었다. 지난 2024년 10월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하면서 쓴 문장이다. 그 자료는 1년 10개월 뒤 판결문 증거 목록에 그대로 올랐다.


유죄 증거 일곱 줄, 다섯 번째가 '나무위키'


피고인은 70대 시민 A씨다. 지난 2024년 5월 31일 아침 카카오톡 단체채팅방에 글 한 건을 올렸다. 방에는 174명이 있었다. 정천수씨에 관한 내용이었다.


판결문에 적힌 증거의 요지는 7개 항목이다. 고발장과 카카오톡 게시글, 단톡방 캡처화면이 앞에 놓였다. 이어 창원지방법원 판결문과 '나무위키 검색결과(열린공감TV)'가 적혔다. 뒤로 경영권 분쟁 관련 기사와 판결문 1부가 붙었다.


형사소송법 제323조 제1항을 보면 유죄 판결에 적어야 할 것이 정해져 있다. 범죄될 사실과 증거의 요지, 법령의 적용이다. 증거의 요지는 범죄사실을 무엇으로 인정했는지 밝히는 자리다. 참고삼아 본 자료를 적는 난이 아니다.


경찰이 먼저 나무위키 인용


나무위키가 기록에 들어온 경위는 경찰 수사보고서에 남아 있다. 서울혜화경찰서가 2024년 10월 15일 작성한 수사보고서다. 제목은 '당 사건 메시지의 내용이 허위의 사실인지 여부'였다.


나무위키 제목은 '대표이사의 횡령, 배임 의혹과 혼란, 경영권 분쟁 소송의 시작과 끝'이다. 경찰은 이 항목과 관련 언론기사를 열람했다고 적었다. 정씨가 운영권을 부당한 방법으로 탈취했다는 내용이 문제였다. 그 대목을 두고 "거짓의 사실로 봄이 상당함"이라고 결론지었다.


경영권 분쟁이 실제로 어떻게 흘러갔는지 판단한 근거가 나무위키 문서였다는 뜻이다. 그 페이지는 지금도 누구나 계정을 만들어 고칠 수 있다. 어느 시점의 판본을 열람했는지는 수사보고서에 적혀 있지 않다.


검사가 8일 만에 경찰 나무위키 인용 제동


8일 뒤 검사가 제동을 걸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2024년 10월 23일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했다. 결정문 첫머리에 나무위키 이야기가 나온다. 검사가 고른 표현은 "무척 위험하며"였다.


결정문에는 "누구나 편집이 가능한 나무위키"라는 대목이 있다. 그런 자료로 "사실관계를 확정하는 것은 무척 위험하며"라고 적혀 있다. 검사는 정천수와 강진구 기자 사이에 분쟁이 있었던 것은 사실로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양쪽이 낸 소장과 답변서를 확인하라고 요구했다.


경찰은 보완수사를 이행했다. 2025년 4월 그 결과를 검찰에 통보했다. 검찰이 약식명령을 청구한 것은 그로부터 열 달 뒤인 2026년 2월이었다.


검사가 확인하라고 한 소송에서는 그사이 판결이 나왔다. 수원고등법원은 2025년 7월 24일 경영권 분쟁 항소심 판결을 선고했다. 1심에서 각하됐던 사건을 뒤집은 결과였다. 재판부는 정씨가 주식 증여 교섭을 전면 거부한 행위를 짚었다. 신의성실의 원칙에 비춰 계약자유 원칙의 한계를 넘는 위법한 행위라고 판단했다.


지급을 명한 위자료는 7000만원이다. 이자를 더하면 7659만원이었다. 이 판결은 확정됐다.


수원고등법원이 인정한 것은 계약교섭을 부당하게 깬 불법행위다. 형법상 사기죄가 성립한다고 본 것이 아니다. 주주권을 확인해 달라는 청구는 기각됐다. 판결이 나온 시점도 A씨가 글을 올린 뒤다.


그래도 남는 사실이 있다. 검사가 보라고 한 소장과 답변서는 실재했다. 그 기록을 심리한 고등법원 판단까지 나와 있었다. 나무위키 문서에는 이 판결이 적혀 있지 않았다. 이번 1심 판결문 어디에도 이 판결은 언급되지 않는다.


노무현 독대, 정천수는 모르겠다고 했다


판결문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 이야기도 나온다. A씨는 정씨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18번 독대했다고 자랑해 왔다는 취지로 적었다. 1심 재판부는 이 대목도 허위라고 판단했다. 적어 놓은 근거는 한 줄이다. 정씨가 그렇게 말한 사실을 입증할 자료가 제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씨는 2025년 3월 28일 경찰 조사에서 이 부분을 진술했다. 18번이라고 말했는지 여러 차례 뵌 적이 있다고 말했는지를 두고 "오래되어 모르겠으나"라고 답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났다는 것을 입증할 자료가 있느냐는 질문도 받았다. "현재로서는 관련 자료가 없습니다"라고 했다.


정씨가 그렇게 말하는 영상은 남아 있다. 2022년 5월 28일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열린 '시민포털' 설명회 자리였다. 영상에서 정씨는 "노무현 대통령님과 18번 독대를 했습니다"라고 말한다. 18개 혁신도시 일을 하면서 그랬다는 설명이 앞에 붙는다. 뒤이어 "노 대통령님은 저를 만나서 독대하면서"라며 당시 상황을 묘사한다.

▲정천수 씨가 노무현 대통령과 독대했다고 자랑하는 장면(2022.5.28, 미국 시애틀)


이 영상은 2022년 8월 9일 유튜브에 전체가 공개됐다. 5일 뒤 더탐사는 이 발언을 인용해 보도했다. 정천수 주장이라며 노무현 전 대통령과 18번 독대했다는 대목을 그대로 옮겼다. A씨가 글을 올리기 1년 9개월 전이다.


판결문 5면에 적힌 숫자는 '19번'이다. A씨가 올린 글과 판결문 2면 범죄사실에는 모두 '18번'으로 적혀 있다. 허위라고 판단한 대목에서만 숫자가 하나 늘었다.


1심 재판부는 정씨가 실제로 독대를 했는지에 대해 판단하지 않았다. 정씨가 그렇게 말한 사실이 입증됐는지가 쟁점이었다. 재판부는 입증할 자료가 없다고 봤다.


판결문 증거의 요지는 참고자료 난이 아니다


나무위키 문서는 누가 썼는지 알 수 없다. 편집자는 대개 계정 이름으로만 남는다. 형사소송법 제313조를 보면 진술을 적은 서류를 증거로 쓰는 길이 정해져 있다. 작성자가 법정에 나와 자기가 썼다고 확인해야 한다. 작성자를 부를 수 없는 문서는 이 절차를 밟을 방법이 없다.


길이 하나 더 있다. 검사와 피고인이 증거로 쓰는 데 동의하면 그대로 증거가 된다. 형사소송법 제318조 제1항이다. 이 사건에서 동의가 있었는지는 공판조서를 확인해야 알 수 있다.


증거로 채택된 뒤에도 문제가 남는다. 나무위키 문서는 판결이 난 뒤에도 계속 바뀐다. 항소심이 그 자료를 다시 보더라도 경찰이 본 판본과 같은지 확인할 길이 없다.


A씨는 정씨와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가 아니다. 경찰 조사에서 글에 적은 내용을 유튜브 방송에서 봤다고 진술했다. 1심 재판부가 선고한 형은 벌금 100만원이다. 약식명령 단계에서 정해진 금액이 그대로 유지됐다. 선고 이틀 뒤인 9월 11일 A씨는 항소했다.


검사는 항소하지 않았다. 수사 단계에서 한 차례 걸러졌던 자료가 판결문 증거 목록에 남았다. 어느 범위에서 쓰였는지는 판결문에 적혀 있지 않다. 검사가 무척 위험하다고 적은 문장은 수사기록에 그대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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